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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09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09. 8. 1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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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10ㄱㄴ

19 하늘에 있는 하느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계약 궤가 나타났습니다.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2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3 또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크고 붉은 용인데,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었으며, 일곱 머리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4 용의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휩쓸어 땅으로 내던졌습니다. 그 용은 여인이 해산하기만 하면 아이를 삼켜 버리려고, 이제 막 해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지켜 서 있었습니다.
5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6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의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제2독서 1코린토 15,20-27ㄱ

형제 여러분, 20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2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23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24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모든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25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합니다. 26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27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복음 루카 1,39-56

39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이 상 위에 뚜껑으로 가려져 있는 항아리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사람 두 명에게 “이게 무엇이오!”하고 물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항아리를 자세히 살펴보더니만 대답합니다.

“청자 항아리군! 꽤 오래된 골동품이네요. 값이 제법 나가겠는데요?”

두 번째 사람은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속을 들여다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또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맛도 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이 담겨 있는 청자 항아리입니다.”

누가 더 그 항아리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했을까요? 당연히 두 번째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두 번째 사람의 모습보다는 첫 번째 사람과 같이 겉모습만 보고서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방법이 훨씬 쉬우니까요. 그러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속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앞서 항아리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 뚜껑을 열어 냄새도 맡아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맛도 보는 수고로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수고로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고로움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우리들입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그렇지요. 저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은 보는 수고로움은 생략한 채 그냥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님의 자리는 사라지고 맙니다.

수고로움이 없는 행동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경직되게 만들어 아무것도 못하게 만듭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꽤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축구, 야구, 농구, 족구, 탁구……. 어느 것 하나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지요. 그런데 지난 본당 캠프 때 편을 갈라서 축구를 하면서 ‘예전의 날렵했던 나는 어디 갔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을 발에 제대로 맞출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조금만 뛰었는데도 숨이 목까지 차오르면서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신부가 된 후 축구를 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몸이 굳어 버린 것이지요.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랑의 노력도 하지 않으면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약간의 수고로움은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은 물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그 결과 이 세상 곳곳에 계시는 주님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성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성모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수고로움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잉태했음에도 불구하고 편한 길로 가려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영광보다는 고통과 시련이 가득한 수고로움의 연속인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기념하듯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내 앞에 놓인 수고로움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수고로움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그 길을 힘차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을 이 세상에 뿌리 내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뿌리 내릴 때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영광의 자리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신은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장영희).



깨달음을 얻은 날(김홍신, ‘인생사용 설명서’ 중에서)

어느 대기업의 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람을 마주 보고 맞으면 역풍이지만 뒤로 돌아서서 맞으면 순풍이 된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고 상대가 바뀌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내가 원하는 만큼씩 바뀌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남보다 돈도 많고 명예도 지위도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성철 대선사의 말씀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그까짓 명예가 내 목숨보다 중요한 것도, 영원히 변치 않는 것도, 나 홀로 가져야 하는 것도, 설령 명예를 잃어도 되찾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자 그날 밤부터 잠도 잘 자고 밤맛도 생기고 생기가 돌면서 금세 체중도 원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그리도 평온한 것을, 한 가지 생각에 마음을 묶어놓고 질질 끌려다녔기에 분별력을 잃었던 것입니다.

‘돈을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명예를 잃으면 아주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참 옳은 소리라는 생각을 했으면서 막상 제 문제에 봉착하니 쉽게 마음이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때 명예를 잃은 것도 손해를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앞으로 닥칠지 모를 큰 고통에 대비해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 되었습니다.

출처 :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김이냐시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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