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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9.30)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되라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9. 2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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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9.30)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되라

2022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 루카 10,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그러니 심판 때에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부터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노총각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여성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도 이 형제님은 결혼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였습니다.

어느 날, 이 형제님의 지인이 “아직도 완벽한 배우자를 못 찾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는 만났었다고 고백합니다. 지인은 깜짝 놀라서 “그렇다면 왜 지금도 혼자예요?”라고 물었지요. 이 형제님께서는 한숨을 내쉰 뒤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딱 한 번 완벽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더군요. 그래서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완벽한 배우자만 찾고 있었지, 본인 스스로가 ‘완벽한 배우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실 자기의 완벽함을 채우는 데 먼저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우리 일상 삶 안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대방의 완벽함을 요구하면서,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에 관해서는 철저히 판단하고 단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자기의 완벽함 정도를 먼저 봤어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완벽하시고, 그에 반해 인간은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은 기억한다면 남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모습을 늘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즉, 남에는 엄격하고, 자기에게만 관대합니다.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도시들은 율법 학자들의 종교교육이 가장 성행하던 종교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만과 자기도취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외면했고,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고개를 돌렸습니다. 종교도시였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곳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듣던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기는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는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히 사랑이 기초해서 했던 말씀과 행적에 대해, 율법도 모르고 율법을 따르지 않는 잘못된 사람이라고 단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모두는 예수님 말씀처럼 현재 폐허만 남아 있거나 아예 흔적도 없습니다.

자신의 완벽함을 생각하며 남을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의 본모습을 인정하면서, 다른 이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사랑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 선언의 주인공이 아니라, 행복 선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오드리 헵번).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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