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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크엔드]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간다

보고걷고싶다

by 로킴 2008. 6. 2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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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간다!

그들은 지금 섬으로 떠나고 있다. 섬으로 간다는 말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의 선택. 혹은 현실을 외면함,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떠남 등 여러가지 무거운 상상을 낳게 한다. 하지만 그 섬이 홍도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무려 2시간 30분이나 달려야 하는 배안에서부터 한바탕 즐거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취재를 나온 기자도 왠지 선캡 하나 쯤은 쓰고 '뽕짝'노래 몇 곡이라도 흥얼흥얼 입에 달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 온통 잔칫날같은 쾌속선 속 섬처럼 조용히 입다물고 앉았더니 점심상에서 한잔 마신 반주의 취기가 금세 오른다. 행여 속이라도 안좋을까 멀미약을 입에 털어 넣고 잠을 청한다. 눈을 뜨면 만나게 될 홍도를 그리며.

홍도는 우리나라가 가진 수천개의 섬 중에서도 '공대 여학생'처럼 단연 명승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과연 가까이서 보니 삐죽삐죽 솟아오른 둥글둥글한 바위섬이 본 섬을 에워싼 것이 예사가 아니다. 석양을 맞을 때면 전체가 붉은 빛깔을 띤다 해서 홍도(紅島)라 불린 다지만 '환상의 섬' 홍도는 그 서정성이 남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홍도로 여행을 떠나는 이 중·장년층 여행객 대부분은 동명의 기생 '홍도'가 등장해 수많은 이들을 울렸던 30년대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란 작품을 언뜻 떠올리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선실 안 누군가의 입에서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이~이~있다아~"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괜시리 멀쩡한 섬인 홍도가 울리는 없지마는 결국 '오빠'는 홍도 선착장에 섰다.

가정의 달 오월의 연휴를 며칠 앞뒀지만 효도관광을 떠나온 듯 돌아가는 배 안에는 중장년층의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앞선 중국 장자지에나 금강산처럼 '사시는 동안 홍도 한번 쯤은 봐야지(혹은 보여들여야지)'하는 생각이 이렇게 선실을 빼곡히 채운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화장실을 가느라 일어서 보니, 노느라 지쳐 고개를 숙이고 잠든 수많은 '선캡과 새마을 모자'사이로 하얀색 MP3 플레이어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낀 채 머릴 맞대고 잠든 젊은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홍도간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쳐대며 즐거워했을, 이 나이차 많이 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여행이 뭘까?'하는 본질을 다시금 되씹어보게 된다. 천하 경승을 다녀본 여행기자가 아니라 정부의 관광 정책권자도 막상 부대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을 이 즐거운 홍도행 쾌속선 내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껴본다. 내 어머님이 이 안에 계실까 선실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홍도·흑산도(신안)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

●홍도는 산이다=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되묻는 이도 있을 법하지만. 보석처럼 흩뿌려진 신안의 많은 섬 중에 고관대작의 왕관같이 빛나는 홍도를 돌아보면 홍도와 수많은 바위섬들은 절경의 천하명산이었음이 틀림없다. 그것도 금강산 1만 2000봉을 찾아가려다 미처 이르지 못하고 설악산에 주저앉아버린 울산바위처럼. 천하비경으로 손꼽히는 중국 후난성 장자지에(장가계)의 중심 봉우리가 되려고 서해 건너가다 그만 물이 들어 섬이 되어버린 듯 황홀경을 뽐내기 때문이다.

나비 넥타이처럼 잘록한 모양의 홍도를 가장 잘 둘러보려면 육지보다는 유람선으로 한바퀴 도는 선상 투어가 제일이다. 홍도 10경(혹은 33경)이라 불리우는 것 대부분이 배를 타고나가 바다에서 홍도를 들여다 볼 때야 비로소 보이는 까닭이다. 유람선 관광은 보통 2시간 남짓이지만 가이드를 겸한 선장이 기분 좋으면 30분쯤 늘어나기도 한다. 걸죽한 남도 사투리의 설명을 들으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유람선은 어떻게 보면 구식이지만 바다에서 솟아오른 20여개의 기암괴석들은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이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절경의 자연에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결합돼 새로운 맛을 낸다. 칼바위. 곰바위 등 ‘클래식’한 바위섬 전설에다 코카콜라병을 닮았다느니. 성모 마리아. 독립문. 키스하는 남녀를 닮은 바위섬 이야기 등 필시 10~20년 밖에 안됐을 ‘최신 버전’이 나와 귀에 딱딱 들어와 박힌다. 비취색 바다 위에서 상쾌한 바닷바람 맞으며 즉석 회를 즐기다보면 뱃놀이의 즐거움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된다. 홍도에는 수많은 해식동(바닷물에 침식된 해안동굴)이 있어 배를 타고 그안에 들어가보면 밖에서 볼 때와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환타지 영화에서 해적들의 비밀 소굴처럼 유난히 조용한 해식동 속에서 즉석 회 한접시를 맛보는 것도 별미 중 별미다. 하지만 동굴이 작은 탓에 아쉽게도 낚싯배를 대절하지 않고선 들어가 볼 수 없다.

●홍도의 낙조와 일출=독립문 바위 부근에 배를 띄워놓고 너울대며 ‘그 좋다는 홍도 낙조’를 기다렸다. 온통 선홍빛으로 물든다는 홍도를 눈에 담기 위해 기다렸지만 마분지보다 두꺼운 구름이 낀 탓에. 구름 끄트머리만 보라빛 기운이 감도는가 싶더니 금세 어둑어둑해져 버린다. 낙조 대신 ‘낙심’만 가슴에 품고 돌아서는 길. 귓가에는 ‘낙조 중 홍도 낙조가 제일’이라던 어느 선배의 말만이 뱅뱅 맴돌았다. 이튿날 낙조의 아쉬움 대신 일출을 챙기기 위해 오전 5시쯤 일찌감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바다로 나섰다. 유람선은 새벽에 운항하지 않는 탓에 낚싯배까지 대절했다. 지난밤보다 날씨는 개었지만 수평선 너머 구름이 하필이면 동쪽으로 깔린 탓에 일출 역시 보지 못했다. 대신 대양의 상쾌한 새벽 공기와 주낙 어구를 걷으러 나가는 홍도 어부들의 진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전복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산으로 올랐다. 홍도를 육지에서 맛보려면 반드시 깃대봉에 올라야 한다. 홍도는 지형상 1·2구 두 마을이 있는데 1구마을 언덕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에서부터 설치된 나무데크를 따라 전망을 즐기며 깃대봉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인 까닭에 현재는 산불예방을 위해 등반로를 제한하고 있어 중간 전망대까지 밖에 개방하지 않고 있다. 전망대에서는 홍도의 잘록한 부분에 위치한 선창과 반대편 홍도해수욕장의 몽돌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로 태워갈 쾌속선을 기다리느라 선창으로 나갔다. 기대에 찬 밝은 얼굴들을 가득 실은 배가 저만치 보인다. 무뚝뚝한 배가 울리는 “뿌우뿌우” 두번의 기적소리가 아쉬움을 섬에 남겨둔 채 떠나야 하는 이들의 타는 속을 긁는다.

홍도(신안)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

◎ 여행정보

홍도는 6.87㎢(약 208만평)의 작은 섬으로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170호)로 지정돼 있는 까닭에 문화재 관람료(1000원)를 내야 한다.

●잘 곳=홍도에는 근사한 리조트는 없지만 1구에 여관들이 밀집해 있다. 비교적 깨끗하고 식당이 딸린 집이 많다.

●먹을거리=홍도주민들은 가두리 양식을 하지 않으며 신선한 자연산 우럭·광어 등 대표적 횟감과 더불어 횟감, 탕, 구이로 모두 좋은 '열기(사진·볼락과)'가 많이 난다. 갯벌이 없는 까닭에 순수한 홍도산 낙지와 개불은 없다. 홍어의 고향인 흑산도에서는 자연산 돌김과 미역, 다시마 등을 선물로 사오기 좋다.

●놀거리=관광 유람선은 오전·오후 2번 있으며 1만 7000원(어른기준). 낚싯배를 빌리려면 흥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시간 기준으로 20~30만원 이상 줘야 한다. 흑산도에서도 유람선관광(1만7000원·어른기준)이 있으며 택시를 이용한 2시간짜리 육상관광을 하려면 6만원(4인기준)이 든다.

●여행상품=선박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하는 홍도와 흑산도는 여행상품을 이용하면 편리하게 갈 수 있다. 한국드림관광은 홍도와 최서남단 가거도를 KTX로 1박2일에 다녀올 수 있는 상품을 마련했다. 한국관광공사 5월의 우수추천 상품으로 선정된 이 상품은 용산을 출발한 후 목포에 도착, 동양고속 쾌속선을 타고 홍도에 입도, 유람선으로 홍도 앞바다를 한 바퀴를 돌고 이튿날 가거도를 당일로 들어가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요금 20만 3000원부터(어른1인). 일정 중 모든 교통비와 유람선, 숙박, 식사가 포함됐으며 전세버스를 이용하는 상품(18만9000원부터)도 있다. 한국드림관광㈜ (02)849-9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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