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노랑·빨강 세상… 꽃 속에 마을이 파묻힌 듯 |
‘꼭꼭 숨은 꽃구경 명소’ 구례 현천마을-하동 먹점마을 |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 봄꽃을 보러 지리산을 넘어가는 길 봄꽃 구경의 명소는 단연 섬진강변이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구례와 광양, 경남 하동에는 해마다 봄소식을 알리는 꽃들이 릴레이로 피어난다. 섬진강변의 매화에서 출발한 꽃소식은 구례의 산수유로 이어지고, 쌍계사 길의 벚꽃이 마지막 봄꽃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겨우내 무채색의 풍경에 지친 도회지 사람들에게 봄꽃만큼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섬진강변의 봄꽃 명소라면 죄다 인파와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것이다. 꽃구경의 행락객들이 한곳으로 몰리면서 꿈꿨던 호젓한 봄 여행은 시끌벅적한 행락이 되기 일쑤다. 봄꽃이 화사한, 고요한 봄풍경을 만나겠다면 일단 행로부터 바꾸자. 곧바로 섬진강변에 가닿는 지름길보다는 에둘러 지리산을 넘는 길을 택한다. 전북 남원시 인월면에서 861번 지방도로를 타고 지리산 성삼재를 넘는 길이다. 봄이 늦게 당도하는 지리산 깊은 골에도 이즈음에는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계곡의 물색도 연초록으로 빛나고 있다. 지리산 도로를 따라 해발 1090m 성삼재 휴게소에 오르면 멀리 전남 구례의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능선 너머로 펼쳐지는 초록의 보리밭을 내려다보노라면 계절을 가로질러 봄으로 향하는 기분이다. 아직 봄꽃을 만나지 못했어도 이렇듯 멀리서 보는 들판의 풍경만으로도 여행자들의 마음은 설렌다. 성삼재를 넘어 전남 구례로 들기 전에 천은사가 있다.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한때 ‘감로사’라고 불렸던 절집이다. 절집의 위세는 구례 화엄사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풍경소리 그윽한 봄날의 절집 풍경을 즐기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천은사에서는 일주문 현판을 유심히 보자. 조선 4대 명필 중 한 명인 원교 이광사가 쓴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글씨는 마치 물 흐르듯 씌어 있다. 수체(水體)란 글씨체의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 섬진강 건너 지리산 자락에 숨어 있는 매화마을 그곳의 매화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지리산 산자락의 마을에 매화가 화선지에 번지듯 화르르 피어난 곳. 지리산의 남쪽 능선이 굽이치면서 솟구친 구제봉(767.6m) 아래 자리 잡은 경남 하동의 먹점마을이다. 대개 봄 매화를 찾는 사람들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광양시 다압면 일대의 매실농장을 주로 찾아간다. 이곳의 농원들은 매화나무가 밀생해 자라는 과수원이자 드넓은 꽃밭이다. 농장마다 빽빽이 밀생한 나무의 매화는 화려한 꽃보자기를 펼치듯 피어난다. 온통 매화로 뒤덮인 농원의 풍경은 감탄사가 터질 만큼 화려하긴 하지만, 매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운치’는 모자란다. 거기다 이즈음 같은 매화 개화기에는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차량은 꼬리를 물고 줄을 서서 움직일 줄 모르고, 길가 좌판에서는 트로트 가락이 울려 퍼진다. 고즈넉한 봄 정취와는 거리가 먼 행락지의 분위기다. 반면 섬진강 건너편 가파른 능선을 힙겹게 치고 올라가서 만나는 해발 400m의 먹점마을은 산골마을의 정취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황토흙을 이겨 바른 집들이 있고, 돌담이 있다. 유려하게 휘어진 길과 다랭이 밭들도 있다. 게다가 이쪽의 매화는 대부분 토종이라서 꽃송이가 다닥다닥 붙은 개량종과는 다른 품격이 느껴진다. 광양 일대의 매화들은 서로 저만 봐달라고 아우성치지만, 이곳의 매화는 자연스럽게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진다. 섬진강변의 매화들이 화려한 유화라면, 이곳 매화의 느낌은 산수화라고 할 수 있겠다. 먹점마을로 오르는 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한쪽 사면이 온통 분홍빛 홍매화로 가득한 풍경. 매화는 대개 꽃받침의 색깔로 나누는데 초록빛의 꽃받침을 가진 것은 청매화, 붉은 꽃받침을 가진 것은 홍매화, 꽃받침의 색이 두드러지지 않아 꽃잎이 순백으로 빛나는 것은 백매화라 부른다. 대부분 매화농원들은 홍매화와 백매화, 청매화를 두서없이 심어 홍매화 군락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 안개 같은 산수유가 고즈넉한 현천마을을 휘감다 온난화 탓일까. 올해 봄꽃들은 두서가 없다. 매화가 만개한 뒤 하나둘 꽃잎을 떨어뜨릴 때면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 순서지만, 올해는 섬진강 일대의 매화와 산수유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났다. 덕분에 이번 주말쯤 섬진강변의 봄꽃을 보러 나선다면 광양과 하동의 매화와 더불어 구례의 노란 산수유가 절정에 이르는 모습도 함께 볼 수 있겠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은 예부터 산수유로 유명한 곳이다. 구례가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고 구례군 생산량의 85%를 산동면에서 수확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산수유 마을’이라 할 만하다. 산동면의 산수유 명소로 알려진 곳은 지리산 만복대(1433m) 서남쪽 기슭의 위안리 상위마을이다. 떠들썩한 축제나 북적이는 인파 대신 조용한 봄맞이를 원한다면 상위마을 보다 현천마을을 찾아가보자. 지리산 온천 쪽에서 바라보자면, 상위마을 반대쪽 구릉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현천마을은 상위마을 못지않게 산수유나무가 마을을 온통 감싸고 있는 곳이다. 현천마을의 노란 산수유꽃은 특히 지난 가을 채 수확하지 않은 붉은 산수유열매와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마을 곳곳에서 겨우내 익어 붉게 빛나는 산수유열매와 노란 산수유꽃이 한 가지에 붙어 있다. 특히 산자락의 산수유는 노란 꽃보다 붉은 산수유열매의 빛이 더 강하다. 현천마을에서 또 눈길을 잡는 것은 자그마한 저수지. 봄 가뭄으로 물이 마르긴 했지만, 물가의 산수유나무가 물에 비쳐 그려내는 반영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을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개울물을 마을 담 밖 작은 물길로 끌어들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돌담과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설치해놓은 무당벌레 모양의 조명도 눈길을 끈다. 밤이면 무당벌레 모양의 은은한 조명이 산수유꽃을 비춘다. 현천마을에서는 낡은 옛집을 끼고 있는 돌담길을 느릿느릿 산책하며 전망대에 올라보자. 마을에는 두 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제각인 영모제 쪽의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이 으뜸이다. 붉은 산수유열매와 노란 산수유꽃. 여기다가 영모제 뒤편의 진초록 대나무숲이 색깔을 보탠다. 구례·하동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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