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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11.03) 주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1. 11. 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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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11.03) 주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2021년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지금 인류의 종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이라고 있었습니다. 많이 이가 네안데르탈인은 머리를 쓰지 않아서 멸종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호모 사피엔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존재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뇌의 크기가 150% 더 컸고, 몸집도 훨씬 컸다고 합니다. 즉, 머리도 좋고 힘도 좋기에, ‘호모 사피엔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멸종되었을까요?

‘네안데르탈인’은 큰 무리를 지어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함께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믿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언제나 함께했습니다. 대규모의 무리를 지을 수 있었고, 이 무리가 커져서 국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함께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본성을 가지고 함께하지 못하면 그만큼 이 세상에서 살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함께’는 인간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으로 인해 ‘하느님’과도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든 당신의 길을 따르면서 함께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정말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사실 초기의 제자들은 영광만을 가져다주는 길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난과 죽음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를 받아들이면서 따르자면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계속 어려운 조건을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아닐까요? 완벽한 마음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27)

십계명의 제4계명에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워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싫어하다’, ‘혐오하다’라는 뜻이 아니라, ‘뒤로 돌리다’, ‘2차적으로 생각하다’라는 뜻의 표현이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필요하다면 부모까지도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도 예수님 다음 자리에 남겨 놓아야 한다는 뜻이고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사랑의 무게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무게로 십자가의 무게도 늘어납니다.



비교를 멈출 때 개성이 시작된다(카를 라거펠트).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좋아해야 합니다.

“그곳에 산이 있어 오른다.”

1922년 하버드대학교 초청 강연에서 영국의 산악인인 죠지 멜러니 경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는 곧바로 위의 대답을 했습니다. 워낙 유명한 대답이었고, 저 역시 신학생 때 산악반 활동을 열심히 했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냥 산이 좋은 것입니다. 산악반 활동을 할 때는 산 자체가 너무 좋아서 산행 지도만 봐도 행복했고, 등산 장비를 사면 빨리 사용해보고 싶어서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면서 산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등산하는 힘듦도 있었지만, 바빠서 종일 시간을 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점점 등산에서 기쁨과 설렘을 갖기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산을 좋아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종종 주님께 대한 신앙에 슬럼프가 온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처음과 달리 기도와 미사를 통해 기쁨을 얻기 힘들어지고, 성당 가는 것도 설레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주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다시 좋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시 기쁨과 설렘으로 주님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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