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3.14)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2022년 3월 14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복음 루카 6,36-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자신은 뒤끝이 없는 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마주 보고 다퉜습니다. 한참을 언쟁하다가, 상대방은 말이 안 통한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뒤 이 형제님의 마음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평소에 자신이 뒤끝 없다고 했는데, 자기를 비판하고 또 다퉜던 그 사람을 쿨하게 다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화가 나고 얼굴도 보기 싫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자신이 얼마나 뒤끝 많은 사람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좋은 성격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성격이 진짜로 좋은 성격이 아닐까요? 이는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지만 가능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보고서 나도 그런 잘못을 할 수 있는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할 때, 진정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살지 않고 남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자기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남의 잘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잘한 일을 인정할 때는 주의 깊은 관찰과 분석을 통해서 가능하면서도, 남의 잘못은 왜 이렇게 빨리 자기 눈에 비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상대방에게는 남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나의 잘못이 너무 쉽게 보일 것입니다. 정말로 고치기 힘든 우리의 악습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에 걸쳐서 이 악습을 버리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중국 고전 전한서는 ‘남의 공은 기억하고 과실은 잊어라.’라고 했으며, 서양의 격언은 ‘남을 고쳐 준다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열 번 더 낫다’라고 전해줍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느님 나라에 온전하게 들어갈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도 치료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남을 탓하고 교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대신 남의 잘못을 보고, 그 잘못이 내 잘못도 되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의 겉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법’이 할 일이고, 속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입니다. 따라서 남의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보다, 먼저 자기 잘못을 고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용서하고, 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께 더 커다란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됩니다.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 그런 사람이 되어라(핀다로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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