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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4.12)“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4. 12.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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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04.12)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2022년 4월 12일 성주간 화요일
                                          복음 요한 13,21ㄴ-33.36-38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 유럽의 강대국들은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습니다. 이 식민지 쟁탈전의 선두 주자는 영국과 프랑스였는데, 특별히 영국의 식민지 중 오스트레일리아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의 죄수들을 수용하는 식민지였던 것입니다. 죄인들을 모두 배에 태워 보내 버리면 영국은 진정한 평화가 오리라 생각했고, 더 번영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는 삶의 질이 매우 우수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죄인을 수용하기 위해 점령한 나라인데, 지금은 영국보다도 더 살기 좋은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죄인을 무조건 없애면 진정한 평화가 올까요? 아닙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릴 것 없이 모두 같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차별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 분명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늘 용서와 사랑을 말씀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악을 그 자리에 없애지 않는 것은 모두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끊임없이 판단과 단죄를 하면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반에도 그들 모두 사랑으로 함께하길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배반할 것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빵을 적셔서 유다에게 주시지요. 이는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인 욕망에 젖어서 자기 길을 바꾸지 않습니다. 어둠의 길로 달려 나갑니다.

예수님의 외로움을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자신이 직접 뽑은 제자가 배신하고, 교회의 반석으로 삼은 베드로는 곧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 역시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당신 수난과 죽음을 온전히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짊어져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의 장담을 보게 됩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님 앞에 호언장담할 때가 많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것처럼, 끝까지 주님과 함께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에 얼마나 자주 넘어지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조건을 내겁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아무 일도 없으면, 건강이 허락되면, 가정이 평화로우면, 돈을 많이 벌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이런 조건이 해결되면 또 다른 조건을 내세우면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핑계를 만드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마음가짐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윌리엄 제임스).




갑곶성지에도 꽃이 만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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