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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0. 18)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10. 1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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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0. 18)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2022년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루카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책을 읽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신부님께서 어느 자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자매님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이 자신에게 “넌 창녀야!”라고 했다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여쭈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당신에게 ‘넌 창녀야!’라는 말 대신 ‘넌 의자야!’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화가 나고 슬펐을까요?”

“물론 아니죠.”라고 자매님께서 대답하자, “왜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나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저는 의자가 아니니까요.”

그러자 신부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창녀가 아닌데, 왜 남편 앞에서 힘들어하죠?”

진실이 아닌 말에 흔들리고 있는 우리가 아닐까요?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말은 거짓이 담긴 말이 대부분입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에 굳이 힘들어 할 필요가 있을까요?

진실이 아닌 말과 행동에 더 이상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진실과 늘 함께하는, 그래서 주님의 뜻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흔두 명의 제자를 둘씩 짝지어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풍족하게 해서 보내지 않습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않게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힘든 곳에 보낸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서 보낼까요?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해서 보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한없이 부족하게 해서 보내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크게 흔들릴 것 같습니다. 불평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주님 말씀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세상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불편함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리 그 자체이신 주님의 뜻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말과 행동에 계속해서 흔들렸던 것이 아닐까요? 그 흔들림 앞에서 주님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주님 뜻에 무조건 충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 한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이지(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성 루카 복음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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