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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2. 2)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12. 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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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2. 2)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2022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 9,27-31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8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30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31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





너무나 행복한 지네가 있었습니다. 친구도 많았고, 자기가 있는 곳은 지네에게 쾌적함을 가져다주는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먹을 것도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항상 “행복해~~”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두꺼비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지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행복한 지네야, 너는 어느 발 다음에 어느 발을 내딛는 거니?”

그 순간 지네는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궁리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발을 가지고 있었고, 그동안 어떻게 걸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발이 꼬여서 도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 많은 발을 가지고도 발이 꼬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지네에 모습에 이런 글을 지었나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모습이 자주 엿보입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문을 품으면서 가장 쉬운 걷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될 수 있게 된 지네처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자주 체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냥 평소대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의문을 품는 순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 의심이 생깁니다. 똑바로 함께 걸어갈 수 없습니다. 관계가 꼬여 넘어지고 맙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의심을 버리고 믿는 삶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하고 있나요? 주님께 불평불만 하면서 주님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눈먼 사람 둘이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그들의 이 외침은 믿음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단 한 번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예, 주님!”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믿는 바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주님께서 앞을 보지 못하는 어려움을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분명했고, 최고의 결과로 앞을 볼 수 있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의심과 의문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가 꼬이고,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나의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계속해서 꼬였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렵지 않습니다. 평상시 우리의 삶이 믿음의 삶이었다면, 마치 땅을 걷는 것처럼 편안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가장 적은 것으로도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소크라테스).





예수님을 믿는 눈먼 두 사람의 눈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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