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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2월 2일/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5. 2. 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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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2월 2일/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 루카복음.2,22-40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2000년 초반,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광고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은 성공에 집착했습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세속적인 성공은 아니더라도 나의 변화가 필요함을 깨달았고, 특별히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엄격하게 시간 관리를 했습니다.


엄격한 시간 관리 안에서 커다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생활이 경직되는 것입니다. 틀에 갇혀 인생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큰 틀을 짜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 방학 중 하루 일과표를 만들어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대로 하루를 산 적이 있습니까? 분명히 또 당연히 그렇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실제로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큰 틀을 짜고 저만의 루틴을 만들어 가며 삽니다. 굳이 몇 시간 책을 읽고, 1시간 운동하고, 기도 시간 2시간…. 이런 식으로 배분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은 틀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주님의 뜻을 잃어버리면 목표 없이 살게 됩니다. 주님의 뜻을 간직하면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봉헌을 바라보면서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마음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의 탄생 전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듣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얻은 아기, 파혼해야 마땅할 것 같지만 꿈에서 들은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일, 예수님의 탄생 후 동방박사의 방문,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서 이집트로 피신한 일 등….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큰 틀에서 일치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 예언자와 한나 예언자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들 역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았기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큰 틀에서 벗어나, 세상의 틀에서만 바라봤다면 아기 예수님을 알아볼 수도 그래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틀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틀에만 매여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의 사랑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철저히 하느님의 뜻이라는 틀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실은 없다(발타자르 그라시안).


 
사진설명: 주님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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