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4월 23일/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
✠ 루카복음.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알 수 있는 마음은 사실 실제의 1/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빙산에서 물 위에 있어서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1/7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6/7은 물 밑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 불안과 갈등이 계속 있는 것이고, 또 각종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꼭 100% 알아야만 할까요? 알 수 없는 것을 알려면 커다란 힘이 필요합니다. 만약 중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중국 책을 공부한다면 쉬울까요? 당연히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아는 것도 이렇습니다. 그래서 겸손의 덕, 즉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통해 충분히 지금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겸손과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마음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알 수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분들도 상대 마음을 몰라서 싸우지 않습니까? 특히 무엇보다 내 마음인데, 상대방이 내 마음을 평가하고 저울질하면 속상하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싸우게 되고, 여기에 엄청난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나도 내 마음을 100%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이것이 좋고, 다른 때는 저것이 좋다고 말하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마음을 몰라준다고 억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힘들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마음에 상관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제자들이 왜 엠마오로 가고 있었을까요? 박해를 피해서 도망치는 중이라면, 예수님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함께 걷는 예수님에 대해 말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 죽음 이후 자기 생업으로 돌아가려 했던 베드로(요한 21,3 참조)처럼 실망감으로 가득 차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몇몇 여자의 증언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증언입니다. 문제는 당시 여자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던 분위기를 따라 몇몇 여자의 증언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특히 빵을 떼실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주님께 대한 마음이었지만, 제자들도 예수님 죽음 이후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충분했고, 주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오늘의 명언: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키르케고르). 사진설명: 렘브란트, '엠마오의 그리스도'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4월 24일/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0) | 2025.04.24 |
---|---|
4월 24일 성인 축일 축하합니다^*^ (0) | 2025.04.23 |
4월 23일 성인 축일 축하합니다^*^ (0) | 2025.04.22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4월 22일/제가 주님을 뵈었고, 그분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 2025.04.22 |
4월 22일 성인 축일 축하합니다^*^ (0) | 202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