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월의 뜰에 봄볕이 가득한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 속에서 키 작은 민들레가 웃음을 머금은 채 도란거리고 있습니다.
나의 뜰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또, 오월이 왔습 니다.
초등학교 3학년 큰딸과 5살 작은딸이 빨간 색종이로 카네이션 꽃을 접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아빠에게 주겠다 며 토닥거리는데 문득, 곁에 안 계신 나의 아버지 생각에 그 만 목이 메어
옵니다.
“딸 사랑은 아버지”라고 유난히 두 딸이 아빠를 따르는 것 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지만, 내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건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부
터 우리 집에는 계절마다 꽃 향기, 과일 향기가 떠나지 않았 습니다.
함박꽃과 모란꽃이 앞마당에 가득 피고,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으며 장독대 위로 감이 붉게 익
곤 했습니다. 동네에서 우리 집에만 귤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어찌나 귤이 많이 열리던지 내가
초등학교 다 니던 무렵, 우리 큰아 이만 했을 때인가 봅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쪼르르 집으로 가
면 아버지는 그때마다 귤을 따서 호주머니에 넣어 주셨습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안 계시면 귤나무만 쳐다보다 학교 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추
운 겨울 날, 귤나무가 얼어 죽고 말았습니 다. 아버지는 다음 해 겨울에도 죽은 나무를 위해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 습니다.
딸에게 더 이 상 귤을 따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 후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구
해 오셔서 감나무 옆에 심 으셨고 정성을 다하자 첫해에 5개의 사 과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기뻐
하며 지켜보시던 그 첫 사과를, 채 익기도 전에 내 가 모두 따먹어버렸는데도 아버지 는 내가 무
안해 할까봐 서 운한 내색도 한 번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산으로 밤을 따러 가도 자루에 밤을 담기보다 먹음직한 산열매나 잘 익은 감을 따주시
느라 온 산을 헤매셨 고, 밤을 많이 주워와도 내다 팔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 누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하셨습니다.
한여름에 산으로 데려가 신 적이 있는데, 우리 산에는 나와 아버지가 팔을 서로 맞잡 아야 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 밤나무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심부름을 하려고 그 밤나무 밑으로 가다가 커다
란 수박과 노 란 참외가 주렁주렁한 것을 보고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나무 뒤에
서 싱긋 웃으시며 잘 익은 것만 골라 따주셨는데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 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
다.
오늘처럼 봄이 깊어 라일락 향기가 짙은 새벽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성경책 읽으시던 소리에 잠
이 깼는데 무릎 꿇고 기도 하시던 뒷모습, 수첩에 빽빽하게 일기를 쓰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습니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가 읽으시던 책마다 따라 읽기 시작했고 아버지처럼 일기도 따
라 썼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당신이 남기고 가신 낡고 두꺼운 성경책과 일기장을
반 석 삼아, 아버지의 딸은 글 쓰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 생전에 한 번도 못해 드렸던 말
을 지금에야 글로 씁니다.
사랑합니다.” 아직도 나의 유년의 집에는 아버지의 나무가 꽃피고 열매 맺고 있습니다.
[ 장 윤 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