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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월24일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09. 6. 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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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4일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제2독서 사도행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22 조상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어제 아침 아침기도 전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남아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신학교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지요. 도시와 달리 맑은 공기를 마실 수가 있었고 인위적인 소리가 아닌 맑고 깨끗한 자연의 소리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상태에서 묵주기도를 하며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은퇴를 하신 노(老) 신부님께서 묵주기도를 하시면서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둘의 간격이 가까워졌을 때 저는 고개를 숙이며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인사를 했지요. 바로 그 순간 그 신부님께서는 “아~~ 조명연 신부구나. 반가워. 우리 악수나 할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제게 손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감동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었지요. 저와 나이차가 적은 것도 아닙니다. 자그마치 35년 차이입니다. 저보다 10년 아래의 신부님들 이름도 가물가물한데, 자그마치 35년의 차이가 나는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그러면서 반성을 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저 역시 이제는 후배들의 이름을 외워주고 후배의 손을 잡아주는 선배 신부가 되겠다고 말이지요.

사실 주님께서는 그 원로 사목자 신부님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요. 그래서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모두 기억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즉,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것은 물론 우리의 손을 꼭 잡아서 용기와 힘까지 불러 일으켜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주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렇게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바로 주님을 내 삶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보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선이 주님께로가 아니라 세상에 맞추어 있으니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을 태어나기 전부터 느꼈던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방문 소리를 듣고 태중에서도 즐거워 뛰놀았다고 성경은 말하지요(루카 1,44). 그리고 이렇게 주님께 시선을 맞추고 있는 세례자 요한과 함께 그의 부모도 역시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주님의 뜻에 따라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우리 역시 나의 모든 시선을 이제 주님께로 맞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일상 안에서 주님께서 불러주시는 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주님께서 반갑다고 내미는 손에 악수를 하는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항상 무엇인가를 배워라. 이것이 참된 삶의 방식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배우지 않는 자는 인생을 살 자격이 없다.(아서 헬프스)



기대하지 않았던 기쁨

모든 사람들이 좋은 꿈과 멋진 인생을 꿈꾸었지만
"내일" 또는 "다음에" 라는 말에 속아 인생을 그저
그런 삶으로 허비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오늘"내가 돕지 못하고 하지 못한 일은
"내일"에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이라는 기회에 속지 마십시오.

"다음"이 오지 않은 채 우리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해야 할 좋은 일을 지금부터
작게라도 시작하십시오.

일을 미루다보면 게으름의 군살이 성장보다는 퇴보가,
맑은 정신보다는 혼탁함이, 기쁨보다는 한숨이 더 빨리 찾아옵니다.

미루던 일을 시작하고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자신감과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지금부터 아주 작은 실천을 해보는 것 그것이 기쁨이 되어
인생의 역전의 홈런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출처 :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대지 (大 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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