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熱)이냐 냉(冷)이냐, 여름 더위 물리는 맛 대 맛 (2)
이냉치열 냉면
열(熱)에 맞서는 신세대식 즉효, 직방의 더위 몰아내기 노하우는 냉(冷)이다. 지난여름 유행하던 아이스버킷의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3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도 얼음물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나면 입술이 파래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영하 18도 급속 동결’이다. 겨울철에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자주 등장하는 냉면이 바로 그 메뉴다. ‘냉면은 한겨울에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어야 제맛’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푹푹 찌는 한여름 찜통더위를 혼내주는 덴 살얼음 동동 뜬 냉면이 으뜸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게다.
열이냐 냉이냐
자꾸만 몸이 떨려 냉면, 냉면, 냉면
이마의 흐르는 땀을 ‘급냉(急冷)’시키는 덴 냉면만한 게 없다. 그런데 이 잘난 냉면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진짜냉면은 메밀이 100%다’ ‘전분을 쓰는 함흥냉면은 아류다’ ‘육수를 낼 때 꿩고기가 빠져선 안 된다’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하나하나 받아주며 말을 나누다 보면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열불이 터져 마침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더위 달래려고 갔다가 더위 먹고 냉면집을 나오기도 한다. 앞서 음식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알기 위해 따지고 먹으면 맛이 뚝 떨어진다. 아주 묘한 일이다. 그래도 냉면 한번 제대로 따져 올바르게 알고 먹자.
냉면하면 ‘평양’이냐 ‘함흥’이냐를 따진다. 평양은 ‘물냉(물냉면)’이고, 함흥은 ‘비냉(비빔냉면)’ 혹은 ‘회냉면’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평양냉면집이든 함흥냉면집이든 어딜 가도 ‘물냉’ ‘비냉’ 둘 다 판다. 게다가 냉면, 즉 찬국수를 평양과 함흥에서만 먹었을까? 아니다. 한반도 곳곳에서 먹었다. 서울에서도 먹었고, 강릉에서도 먹었고, 진주에서도 먹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따로 구분 지어 먹을 음식이 아니다. 일반 서민도 먹었고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 그런데 냉면이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나눠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이북의 대표 음식인 것처럼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한국전쟁의 여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북면옥 평양냉면은 채소를 넉넉하게 넣고 육수를 우려내 맛이 깔끔하다
다음은 냉면의 찬 육수.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고기로 국물을 냈고, 여유가 없으면 맹물에 간장이나 소금을 넣어 간만 맞췄다고 보면 된다. 간장이나 소금보다 업그레이드한 것이 동치미와 김칫국물이다.
면(麵)으로 들어가면 ‘메밀 100%냐, 아니냐’를 따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조상들은 메밀 함량 안 따졌다. 구황작물이었기에 메밀이 지겨웠을 것이고, 한국전쟁 이전엔 하얀 밀가루가 오히려 귀했다. 요즘에야 메밀의 본 맛을 즐긴다느니 하며 너스레를 떨지만, 적당히 혼합돼 있어도 본 맛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다. 편안하게 자신의 입맛에 맞는 메밀의 혼합비, 예를 들어 ‘50대50(메밀가루 50에 밀가루 50)’을 찾아서 먹는 게 냉면 맛있게 즐기는 비법 중에 상(上)비법이다.
[왼쪽/오른쪽]닭고기 국물에 메밀냉면을 말아서 내는 평래옥 초계탕 / 평래옥에서 기본반찬으로 내놓는 닭무침. 맛이 기가 막히다
비빔냉면의 본향인 함흥냉면의 탄생배경도 알고 먹으면 재밌다. 함경도 지방엔 메밀농사보다 감자농사가 더 잘됐다고 한다. 감자 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는 질기기만 질기고 별다른 맛이 없다. 그러니 온갖 양념이 더해진다. 매운 고춧가루를 붓고, 새콤한 식초를 뿌리고, 잘 익은 가자미식해를 얹은 게 함흥냉면이다. 요즘은 감자전분값이 뛰어 고구마전분을 주재료로 쓴다. 이 역시 ‘감자타령’까지 하며 찾아다닐 건 아니다.
냉면의 맛 평가에선 냉면만 고집할 게 아니다. 다른 메뉴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일단 수육이나 제육의 메뉴가 없는 곳은 올바른 냉국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기를 직접 삶지 않고 조미료를 써서 맛을 낼 가능성이 크다. 고기를 삶아서 육수를 낸 곳이라면 삶은 고기를 그냥 내칠 수는 없는 일. 손님상에 돈 받고 올리는 게 정상이다. 김치 맛 평가도 빠뜨리면 안 된다. 동치미 국물을 더하든 김칫국물을 더하든 김치가 맛이 없으면 육수와 섞은 국물의 맛도 좋을 리가만무하다.
맵고 달고 신 맛의 조화가 입맛을 당기는 곰보냉면
냉면 맛집
출처 : 청사초롱 7+8호
글: 유지상(음식칼럼니스트), 사진 : 청사초롱 박은경기자
※ 위 정보는 2015년 7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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