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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0. 23)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10. 2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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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0. 23)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2022년 10월 23일 연중 제30주일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행동이나 마음을 말합니다. ‘~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미국의 작가 나폴레온 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욕망이 있다면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이다. 욕망이 없다면 능력이 없는 것이다. 능력은 욕망과 함께 온다.”

제 형님이 은퇴 후에 요즘 그림을 계속 그립니다. 그리고 그린 그림을 가족 SNS에 계속 올리십니다. 점점 더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것을 그림을 잘 모르는 저도 알 수 있겠더군요. 그래서 형님이 그린 멋진 그림을 보며 “우와~~”라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에게는 그림에 관한 관심 자체가 없어서 욕망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능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제 형은 한 번도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 그리고 싶다’라는 욕망을 가지면서, 여기에 본인의 능력도 추가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욕망은 능력도 함께 오도록 합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최초로 등정했던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에베레스트산을 어떻게 올라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욕망이 계속 커졌던 것입니다. 이 욕망에 본인의 능력이 더해져서 최초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고 싶다’라는 욕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본인의 능력이 더해져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한 일이 있었습니다(마태 10,5; 루카 10,1 이하). 그러나 이때는 일종의 실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길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하셨고, 병자를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체험을 위해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신 뒤에 파견하셨습니다.

이번 파견은 그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 결정적이고 본격적인 파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전교는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반대를 받아 때로는 박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교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만들어냅니다. ‘전교하고 싶다’라는 욕망 자체를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을 실행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키워야 합니다. 그에 따른 능력도 생길 것입니다.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파울로 코엘료).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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