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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1. 20)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11. 19.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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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1. 20)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20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복음 루카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책상 위가 깨끗하고 정리 정돈이 잘된 집과 책상 위에 책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고 정리 정돈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집이 있습니다. 어느 집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일까요? 대부분 정리 정돈이 잘 된 집에 사는 사람이 부지런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 이렇게 정리 정돈을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 동창 신부입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방이 얼마나 깨끗하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에 반해서 저는 정리 정돈을 잘하지 못합니다. 책상 위에는 많은 책이 늘 어지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신부에게 부지런해서 정리를 잘한다고 칭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을러서 방이 늘 엉망이라고 말했지요. 이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실 내가 더 게을러.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해서 청소를 자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마 네가 더 청소를 많이 할걸? 나는 게을러서 청소를 잘 안 해. 청소하기 싫어서 어지럽히지 않고, 늘 그 자리에 두고 있을 뿐이야. 게을러서 청소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지.”

이 신부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상당히 부지런한 신부가 있는데 그 신부의 방은 너무나 정신없거든요. 부지런히 살다 보니 늘 방이 어수선해졌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실제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실제와 같다고 단정 짓는 우리는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은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로,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인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약한 모습이었습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시는 순간에서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께 빈정거리며 조롱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큰 죄를 짓고서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라고 모독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관점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의 우측에 매달린 죄수는 그를 꾸짖으면서 동시에 자비를 청합니다. 자기 죄에 대한 뉘우침을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면서 표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면서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예수님을 하늘나라의 왕으로 믿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떤가요? 진정한 뉘우침 후에 믿음은 더 굳건해집니다.



절망은 극적인 변화를 위한 원료다. 자기가 믿었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자만이 탈출을 꿈꿀 수 있다(윌리엄 버로우스).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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