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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1월 19일/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5. 1. 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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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1월 19일/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셨다.

연중 제2주일
✠ 요한복음.2,1-11
그때에 1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2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3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4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5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6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7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9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10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11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아이와 노인의 기억력을 이렇게 비교합니다.


‘아이는 기억력이 탁월하지만 회상 능력이 없고, 노인은 기억력이 감퇴했지만 회상 능력이 있다.’


아이는 기억력이 좋아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겪은 일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하지 못합니다. 회상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노인은 방금 전의 일은 잊어버리기 일쑤이지만, 긴 시간적 맥락 안에서 한 사건이 갖는 깊은 의미를 읽어냅니다. 회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 기억은 가까운 것을 끄집어내는 활동이고, 회상 능력은 먼발치에서 대상을 지켜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전체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순 기억 능력은 떨어지고 회상 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나이 든 분은 단순 기억이 없어진다고 한탄하고, 또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의 단순 기억 능력의 떨어짐을 보고 무시합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필요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저 역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전체를 바라보며 의미를 찾는 회상 능력은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단순 기억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단순 기억만 쫓는 사람은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라는 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움이라는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 첫 번째 기적이 모든 사람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일까요? 죽은 사람을 살리신 것도, 중병을 고치신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 기적을 공개적으로 행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을 목격했던 것은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웠던 일꾼들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기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단순 기억을 떠나 회상 능력으로 그 안에서 새로움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는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즉, 기쁨의 자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혼인 잔치의 삶처럼 당신과 일치해서 기쁨의 자리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삶이 매번 기쁨으로 가득하지 않습니다. 정반대의 슬픔과 괴로움으로 기쁨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있어야 하는데, 포도주는 없고 물만 가득합니다. 이 물을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을 초대하고 또 함께해야 우리의 삶을 흥이 가득한 기쁨의 자리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물이 주님을 통해 훌륭한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따라서 물독 속에 물을 채우듯이, 주님 마음에 우리 죄를, 우리 미움을, 우리의 부족함을, 우리의 이기심을, 우리의 상처와 저주와 분노 등을 모두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주님께서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포도주로 변화시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꾹 간직만 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남들도 그렇게 한다고,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면서 주님 마음에 우리의 부정적인 그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을 단순 기억으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회상 능력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서 일꾼들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도 따라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오늘의 명언: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쉬지 않고 미세하게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일레인 스캐리).
 


사진설명: 파울로 베로네세, 카나의 혼인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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