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3월 20일/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 |
✠ 루카복음.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2019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5년마다 발표되기에 올해 2024년 생활시간조사가 발표될 것입니다)를 보면 수면과 노동시간을 제외하고 1인 가구 청년(19~34세)의 경우 하루에 3.9시간을 혼자 있지만, 노년(65세 이상)이 되면 7.6시간을 혼자 보낸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의 경제적 빈곤 못지 않게 관계 빈곤이 이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된다고 말합니다.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관계의 부재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커다란 위기감을 느끼게 합니다. 실제로 우울증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라서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할 수도 있지만, 길게 바라보면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삶이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의 이 말이 와닿습니다. “나는 이 세계에 소속되어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김희경, ‘에이징솔로’ 중에서) ‘홀로’와 ‘함께’. 모두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홀로 하느님과의 만남도 중요하고, 또 함께 하느님과의 만남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상처받았다고, 바쁘다고 ‘홀로’ 그 자체에 머물면서 스스로 힘든 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함께’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자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온갖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고, 라자로는 너무나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는 인생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곁으로 가고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부자의 모습입니다. 부자가 악인 같습니까? 죄와 엄청나게 친한 사람이었고, 착한 마음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생전에 잔치를 많이 벌인 것을 보면,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입니다. 또 거지인 라자로를 냄새나고 더럽다고 쫓아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승에 가서도 자기 형제들을 걱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악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저승에서 고통받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외되는 ‘함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친한 사람,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과의 ‘함께’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소외되는 ‘라자로’를 개들이 종기를 핥고 있을 정도로 무시하는 데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함께’를 다시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함께’가 될 수 있도록 더 신경 써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위한 ‘홀로’는 절대 안 됩니다. 모두와 사랑을 나누는 ‘함께’를 살아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람은 식물과 같다. 빛을 향해 자라난다(호프 자런). 사진설명: 부자와 라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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