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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4월 9일/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5. 4.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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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25년 4월 9일/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사순 제4주간 수요일
 ✠ 요한복음.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알려고 하라.”


위대한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가 ‘계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했던 대답입니다. 사실 우리는 소극적인 앎만을 추구합니다. 즉, 쉽고 편한 앎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진정한 앎도, 또 계몽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시험 볼 때를 생각해 보세요. ‘아는 문제만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찍으면 모두 맞았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을 해 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인데도, 쉽고 편한 방법만을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성인 되어서는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가 앞에 놓이면 저절로 가장 좋은 결과 얻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무엇이 자기에게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알아서 제일 좋은 길로 이끌어 달라고 청하는 우리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를 제일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문제는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기에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여러분의 앎은 어떤 것 같습니까? 과감하게 알려고 하십니까? 혹시 알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주님에 대해 도저히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신학교에 들어가 철학, 신학, 성서학 등을 배우면서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학교 졸업했으니 이제 하느님에 대해 알 필요가 없을까요? 계속해서 하느님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또 강의를 들으면서 계속 알려고 노력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그 안에서 기쁨을 얻게 됩니다. 또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과감하게 알려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특히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봉헌할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을 꾸짖으십니다. 유다인들은 이 꾸짖음을 받아들이고 변하기 위한 노력보다 계속해서 예수님 말씀을 반대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요한 8,41)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그냥 입으로만 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요한 8,42)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앎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제대로 알아야 주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정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우리 안의 작은 목소리를 믿어야 합니다(잉그리드 버그만).


 
사진설명: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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