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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5.28)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16. 5. 2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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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토요일

독서 유다 17.20ㄴ-25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마르 11,27-33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우리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변화심리학의 권위자인 앤서니 라빈스는 우리의 삶 안에 다음과 같이 5가지의 강력한 질문이 있다고 말합니다.

1. 내 삶에서 자랑스레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

2. 나는 무엇에 감사하는가?

3. 누가 나를 사랑하고,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4. 현재 상황에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5. 내 삶을 더 낫게 만들어가기 위해 오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감사한 것, 사랑하는 것, 좋은 점,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것들을 찾는다면 그 순간 힘이 솟아나면서 지금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합니다. 그보다는 너무나 쉽게 할 수 없다는 단정을 짓고 나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까요?

단정을 짓고 나면 다른 생각의 여지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힘든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부정적인 단정을 내리는 분입니다. 이분에게는 다른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어떤 말도 통하지가 않습니다.

며칠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아주 예쁜 꽃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길은 제가 차로 자주 지나가는 길로 그 날도 차로 지나갔었지만 이 꽃들이 있다는 자체도 몰랐습니다. 왜 보지 못한 것일까요? 자전거에서 보는 시선과 자동차에서 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도저히 바꿀 수 없다고 하니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 그리고 원로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이들은 이미 ‘예수라는 작자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대답이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 온 것인지를 오히려 반문하지요.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요한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요한을 따르고 있는 군중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을 것이므로 그들은 “모르겠소.”라고 답변합니다. 이렇게 책임지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단정만 짓고 있는 그들에게 어떤 대답도 필요 없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단정 짓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알아 뵙고 주님을 지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다보면 결국 실천하게 된다(사이먼 쿠퍼).


당시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


두려움은 그저 생각뿐...

신부가 되기 전에 겁이 참으로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도 자기계발서 중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두려움이 큰 문제였고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신부가 되어서도 행복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는 책들은 제게 어떤 힘도 주지 못했습니다. 읽을 때에는 ‘아하~~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원칙적인 말뿐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미사나 강의를 하게 된 것은 책들을 읽어서가 아니라 그냥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두려움에 관계되는 모든 책을 읽는다고 해도 결코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종종 우리를 찾아오는 두려움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혹시 피하려는 마음으로만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고, 두려움에 반해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은 내게 다가오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고 하지요. 그보다는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그 문제에 관한 생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일을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순간에 생각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그저 생각뿐입니다.


너무나 좋은 말이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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