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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24)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16. 8. 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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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제1독서 묵시 21,9ㄴ-14

천사가 나에게 9 말하였습니다. “이리 오너라.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너에게 보여 주겠다.”
10 이어서 그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복음 요한 1,45-51

그때에 45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제가 갑곶성지에 있을 때에 큰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큰 성당이 세워지기 전에 조그마한 경당이 있었는데, 이 경당 지하에 물이 늘 차는 것입니다. 제 신장만큼 물이 차니 이 지하실을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여름에는 모기 서식지로 그리고 다른 계절에는 심한 악취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이 지하실의 문제를 고민하다가 한 방수업자에게 해결책을 물었습니다. 방수업자는 경당 주위에 도랑을 파고 건물 하부 구조를 떠받칠 기둥을 다시 세우면 완벽한 방수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드는 비용이 3,000만 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하더군요.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이렇게 큰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걱정만 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설비를 하시는 어떤 분을 만났는데 지붕 물받이를 다른 쪽으로 이동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토목을 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이분은 집에 들어오는 물이 문제이니 이 물을 다른 쪽으로 빼는 토목공사를 하자고 하십니다.

세 분을 만났는데, 이 분 모두 다른 의견을 내놓으셨습니다. 이분들은 지하실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저를 돕기 위해 방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성지의 돈을 뜯어내려는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른 방법은 없으며 모두 자신의 방법이 최고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선택은 어떠했을까요? 그분들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방법이었겠지만, 워낙 낡은 건물에 투자하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아주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배수펌프 8만 원 짜리를 지하실에 설치해서 자동으로 밖으로 배수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세 분의 방법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제 생각과 다를 뿐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최고의 방법을 말하는 우리입니다. 그 방법만 바라보니 나는 맞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다를 뿐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이 세상을 훨씬 더 쉽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예수님께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로 추정하는 나타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봅니다. 그런데 나타나엘이 먼저 부르심을 받은 필립보의 말에 보잘 것 없는 나자렛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 예수님에 대해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지요. 편견을 가지고 있기에 예수님을 ‘틀렸다’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인정해주십니다. 자기를 믿고 인정해주는 예수님께 그제야 마음의 문을 열지요. 그러면서 주님을 통해 참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를 믿고 인정해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때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둘을 주고 하나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아홉을 주고도 미처 주지 못한 하나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다(브라운).


바르톨로메오 사도.


세를 주세요(‘좋은 생각’ 중에서)

셋방살이하던 부부가 학교에 들어간 아들을 위해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었다. 시간 내 아들과 방을 보러 다녔으나 들리는 곳마다 마땅치 않았다. 해 질 무렵, 드디어 저렴하고 조용한 집을 발견했다. 하지만 주인이 조건을 걸었다.

“아이가 있는 집에는 세를 주지 않는 것이 제 원칙입니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에요.”

남편이 간곡히 부탁했다.

“우리 아이는 시끄럽지 않습니다. 믿어 주세요!”

“그런 아이가 어디 있나요? 남자아이라면 더 시끄럽죠.”

주인은 딱 잘라 말한 뒤 문을 닫았다. 낙담한 부부는 아들 손을 잡고 돌아섰다. 한데 아이가 다시 돌아가 벨을 눌렀다. 주인이 문을 열곤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아저씨, 제가 세를 들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잖니. 우리는 아이가 있는 집에 세를 주지 않는단다.”

“알아요! 하지만 전 아이가 없어요. 아빠랑 엄마만 있죠. 제가 세를 얻을 수 있는 거 맞죠?”

아이의 재치에 주인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좋다. 네게 세를 주마.”

아이의 지혜로움이 주인의 편견을 깨부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으로 인해서 일치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 자신의 문제점은 바라보지 못할까요? 지혜롭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더욱 더 서로를 멀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살갗을 벗기우는 형벌을 받으며 순교한 바르톨로메오. 그래서의 그의 문장은 칼과 벗긴 살가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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