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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23)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16. 8. 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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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3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테살 2,1-3ㄱ.14-17

1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우리가 그분께 모이게 될 일로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2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3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14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 23,23-26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작은 벌레들은 걸러 내면서 낙타는 그냥 삼키는 자들이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6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저는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서 1시간 정도를 달리고 옵니다. 운동으로는 최고라는 것을 10년 이상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비나 눈이 오지 않는 한 무조건 나갑니다. 어제 역시 자전거를 타고 왔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하던 대로 성지의 초 봉헌을 신청하신 분의 지향을 가지고 봉헌대의 초에 불을 붙였습니다. 아침부터 너무나 더웠습니다. 자전거를 타서 땀에 흠뻑 젖어있는 상태라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땀 흘려 붙인 촛불이 꺼질 정도로 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몇 개의 초가 꺼졌다고 화가 났을까요? 아닙니다. 바람이 너무나 시원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서 바람을 맞았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같이 바람 한 점 없이 덥기만 한 날씨에 한 줄기 바람은 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사실 초를 켤 때에 바람이 부는 것은 정말로 불편하게 하고, 또 힘듭니다. 그런데 그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바람이 저를 기분 좋게 하고 그래서 감사하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시련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면서 그래서 불행하다면서 주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어제 아침의 체험을 통해 꼭 고통과 시련이 찾아온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초를 켤 때 힘들게 하는 바람이 오히려 감사의 이유가 되는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는 고통과 시련 역시 감사의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작은 마음 때문에 일상 안에서의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대신 작은 아픔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서 어렵고 힘들다며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랑이신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주님 안에서 모든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 문제의 풀이는 너무나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위선자라고 하면서 “불행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음식에 곁들이는 양념일 뿐 반드시 꼭 필요한 음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 양념에 불과한 것들까지도 십일조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요. 사소한 것들까지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소한 것들에 온통 주의를 기울이는 작은 마음 때문에 정작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소홀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즉, 의로움, 자비, 신의와 같이 주님께 연관된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것도 충실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크고 중요한 주님을 놓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불행이 아니라 행복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보상을 구하지 않는 봉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한다(마하트마 간디).

 

 

 
페루 리마의 성녀 로사.


사랑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중에서)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이런 느낌을 누구나 체험하지 않았을까요? 하느님께서 계속 밀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몰랐습니다. 내게 날개를 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밀었던 것이군요. 세상을 훨훨 날라고…….


저희 성지 후원회원들에게 드리는 묵상노트. 후원회원들이 좋아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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