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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8)복권

자연속으로쉼터

by 로킴 2022. 1. 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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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28)복권

물살 급한 장자강에 돌다리 놓으려는데…
교각도 못 세우고 공사자금 바닥꾀많은 이방 “복권을 발행하시지요”나락 오십석, 황소 한마리, 돈 천냥…
여기저기 일등 상금놓고 복권 판매어느날 나타난 천하일색 여인…‘절대 실망하지 않을 상품’ 내걸었는데… 

강계를 가로지르는 장자강은 물살이 급해 장마철만 되면 다리가 떠내려가버린다.

가을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나면 원님의 진두지휘 아래 강계 백성 남정네를 모두 동원하여 아름드리 낙락장송을 베어와 널찍하게 교각을 세우고 통나무 상판을 얹어 꺾쇠를 박아 우마차가 지나가도 끄떡없도록 다리를 세워놓지만 이듬해 장마철이면 또 속절없이 무너진다. 

 

원님이 궁리 끝에 평양감사의 승인을 받아 돌다리를 놓기로 했다. 조정의 지원을 받고 강계 백성들에게 세금을 쥐어짜고 부자들에게서 특별헌금도 받았지만, 일년이 지나자 교각도 다 못 세웠는데 공사자금이 바닥났다.

 

함경도 일대에서 모인 석공들은 몇 달째 돈구경도 못한 채 임시 거처 움막집에서 나오지 않고, 또 한 무리는 식구들 굶어 죽는다며 고향으로 돌아가버렸다. 

 

꾀가 똑똑 떨어지는 이방이 묘안을 짜내자 원님이 무릎을 쳤다. ‘복권(福券)’을 발행하자는 것이다. 십전짜리 복권은 불티나게 팔렸다. 일등 당첨자는 팔자가 고쳐지게 되었는데, 원님이 욕심이 생겨 추첨을 할 때 사기를 쳤다. 

 

백성들이 구름같이 모인 동헌 마당에서 ‘一’부터 ‘十’까지 적힌 달걀을 바구니에 담아두고 원님이 검은 띠로 눈을 가린 채 손수 달걀을 집어내니 일등 당첨자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뛰어나왔다. 

 

나중에 뒤숭숭한 소문이 돌았다. 달걀 열개에 표시를 해뒀다는 것이다. 아직도 뜨끈뜨끈한 삶은 달걀, 작은 밥풀을 붙여놓은 달걀, 오래 방치해 수분이 증발해서 가벼워진 달걀…. 눈은 가렸지만 원님은 촉감으로 번호를 알아냈고, 일등 당첨자는 이방의 조카로 당첨금은 원님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복권이 팔리지 않았다. 이방이 또다시 묘안을 짜냈다. 관에서는 손을 떼고 사설 복권을 허용해서 복권 판매대금의 일할을 다리 공사비로 떼자는 것이다. 이재에 밝은 황첨지가 복권 판매를 시작했다. 관인이 찍힌 복권은 순조롭게 팔려나갔는데 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배당금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배당금 칠할을 내걸고 최생원이 복권 판매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복권 판매소가 문을 열었다. 일등 당첨 상금 경쟁이 붙었다. 나락 오십석, 황소 한마리, 돈 천냥, 비단 백필…. 강계 고을이 온통 복권 열풍에 휩싸였다.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 어느 날, 강계의 저잣거리가 훤해졌다. 가마 한대가 서더니 번쩍이는 공단 장옷을 걸친 천하일색에 우아한 여인이 사뿐히 내리고 하녀 둘이 뒤따랐다. 서른 이쪽저쪽인 부티 나는 농염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생긋 웃자 뭇 남성들이 침을 흘렸다. 

 

이튿날, 여인은 저잣거리 모퉁이 목 좋은 곳에 복권 판매소를 열었다. 이상한 것은 일등 당첨 상금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등 당첨 상금도! 그냥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상품’이라고만 공표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마침내 추첨날이 되었고, 일등 당첨은 이진사가 되었다. 이진사가 그 여인에게 물었다. “일등 당첨 상품은 뭐요?” “소첩입니다.” 

 

이튿날, 강계 고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이진사가 하룻밤에 다섯번을 오르고 동창이 밝았을 때 코피를 쏟았다고. 이등 당첨 상품은 하녀였다. 일차를 성황리에 마감하고 이차 복권 판매가 시작되자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십리나 늘어섰다.

 

추첨날, 일등 당첨자는 이럴 수가! 열다섯살 처녀였다.
삼년 전에 어머니가 이승을 하직, 지난달 탈상을 하고 홀아비로 사시는 제 아버지께 일등 당첨 상품을 드리려는 효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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