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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0)명월결의

자연속으로쉼터

by 로킴 2022. 4. 1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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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0)명월결의

피를 나눠 마시고 의형제가 된 한량 셋

그중 둘째는 부인을 두고 기생에 빠져살다 폐렴에 걸려 이승을 하직하는데…

 한량(閑良) 셋이서 매사냥을 다녀왔다. 장끼 네마리를 허리춤에 꿰차고 눈가리개를 채운 날렵한 매를 어깨 위에 얹고, 흑마·백마 각자 제 말을 탄 한량 셋이 종로통을 지나자 어가 행렬만큼이나 구경꾼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들이 명월관 앞에 다다르자 말발굽 소리에 벌써 기생들이 우르르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술상을 가운데 두고 세사람이 기생을 둘씩 끼고 앉으니 큰방이 꽉 찼다.

 “형님, 피를 본 김에 도원결의, 아니 명월결의를 합시다.”

 넘어져 코피가 난 큰형은 코마개를 빼고 새끼손가락을 콧구멍에 넣었다가 피 묻은 손가락을 술대접에 씻었다. 둘째는 갈아 붙인 무릎의 피딱지를 떼어 술대접에 넣고, 셋째는 장끼를 잡으러 가시덩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손가락이 찔려서 나온 피를 술대접에 씻었다. 칼로 손가락을 살짝 베어 피 몇 방울 받는 것이 겁이 나 이렇게 피를 모은 졸장부들은 그걸 나누어 마시며 결의형제를 했다. 셋 모두 금숟가락을 입에 물고 태어났다.

 첫째 유 초시는 스물일곱으로 도승지의 아들이요, 한살 아래 둘째 이 진사는 참판의 아들이다. 둘째보다 두살 아래인 김 도령은 아직 총각으로, 아비가 의정부 정이품인 지의금부사다. 그들은 피로써 형제를 맺어 한평생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 고난과 환희, 실패와 성취를 함께 나누기로 굳게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슬픔과 고난, 실패를 함께 나눌 기회는 한번도 없었다. 오로지 기쁨, 환희, 성취뿐이었다. 허구한 날 좋은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감로주를 마시며, 어여쁜 기생의 치마를 벗기고…. 그런 것이 시들해지면 매사냥을 나가든가 산천경개를 유람했다.

 그런 그들에게 쾌청한 날만 펼쳐지지는 않았다. 먹구름이 몰려왔다. 지난겨울, 명월관에 새로 들어온 아이기생의 머리를 얹어준 둘째가 밤이고 낮이고 기생과 금침 속에서 뒹굴더니 모진 고뿔이 걸려 본가(本家)로 돌아왔다. 부인 윤씨는 질투를 하지 않았고, 곁으로 돌아온 남편을 극진히 모셨다. 부인 윤씨의 친정아버지는 판서로, 가문으로 치자면 친정이 시집보다 두어 계단 위에 있다.

 윤씨는 천하일색에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아가며 글공부를 했고, 어미로부터 배운 사군자는 솜씨가 뛰어나 장안에 이름이 알려졌다. 남편 이 진사가 주색잡기에 빠져도 한번도 끓는 속을 내색하지 않고 말없이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었다. 이 진사의 고뿔이 폐렴으로 전이돼 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자 의형제인 유 초시와 김 도령은 이 진사 집에 살다시피했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왔지만 백약이 무효, 이 진사의 병은 깊어만 갔다.

 이 진사의 의형과 의동생은 어디서 구했는지 산삼이다, 웅담이다, 사향을 손수 달여서 이 진사에게 먹였다. 그러나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양손을 의형제와 잡고 이승을 하직했다. 장례는 물론 사십구재, 백일재…. 유 초시와 김 도령은 가족처럼 상복을 입고 곡(哭)을 했다. 3년 만에 탈상을 했다.

 꽃 피고 새 우는 어느 봄날, 유 초시는 웬 아이로부터 꼬깃꼬깃 접은 편지 한통을 받았다. 그날 저녁 바로 말을 타고 무악재를 넘어 외딴 주막집에 들어가 깊숙이 자리 잡은 객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장옷을 입은 여인이 후― 호롱불을 끄자 유 초시와 여인은 부스럭부스럭 옷을 벗고 뒤엉켰다. 여인의 숨넘어가는 소리, 발정기 고양이 소리, 여인의 감창이 요란한 데 비해 유 초시는 덤덤하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유 초시가 무겁게 한마디했다.

 “제수씨,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왜지요?”

 “저는 유부녀와 짜릿한 관계를 좋아하지 과부와는….”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를 뒤로하고 주막을 나온 유 초시는 말을 타고 성안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 날, 김 도령도 쪽지를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형수님은 눈치코치도 없어. 내가 과부 상대하게 생겼어! 꼬리가 길다가 들통이라도 나면 큰형님한테 맞아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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