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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1. 26)늘 깨어 기도하여라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22. 11. 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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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2.11. 26)

늘 깨어 기도하여라

2022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 몇 명을 만났습니다. 초등학생 때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입니다.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난 것만 같은데, 중년의 나이에 다시 만났는데도 엊그제 만난 것처럼 친숙하고 반가웠습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자리에 있는 친구들, 그 자리에서 나름의 위엄을 보이면서 지냈을 텐데 이곳에서는 모두 초등학생 애가 되어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저녁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한 뒤, 오랜만에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놀자고 노래방에 갔습니다. 바쁘게 일만 하면서 지냈던 친구들, 그래서인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몰라 노래방 책자를 한참이나 뒤적이다가 겨우 번호를 찍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글쎄 모두 느린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때도 분명히 빠른 노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느린 노래만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어느 책에서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글쎄 나이가 들면 박자 맞추기가 힘들어서 느린 노래만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이나 행동은 다시 초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데, 역시 나이는 모두 먹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힘들어합니다. 받아들여야 “그러려니” 할 텐데, 받아들이지 않으니 세상의 모든 불공평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니’라는 마음이 필요한 지금이 아닐까요?

마지막 주님의 날에 대해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이날은 갑자기 찾아오며,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치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렇다면 이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혹시 ‘그날은 절대로 와서는 안 됩니다’라면서 거부하면 될까요? 아니면 그냥 포기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어야 할까요?

주님께서는 그 마지막 주님의 날에 주님 앞에 설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지막 주님의 날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날은 무조건 거부하고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포기하고 좌절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변화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되고, 또 불평불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도 안 됩니다. 그보다 마지막 주님의 날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일 우리는 교회력으로 새해라고 말하는 대림 제1주일을 보냅니다. 이 땅에 강생하여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잘 준비하는 방법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1독서의 묵시록 말씀처럼 주 하느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묵시 22,5 참조), 다른 어떤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존 드라이든).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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