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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월 5일 연중 제10주일(마태 9,9-13) 김기성 다니엘 신부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05. 6. 5.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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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5일 연중 제10주일(마태 9,9-13) 김기성 다니엘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는 말씀을 정당화하시기 위해 마태오를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죄인인 마태오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시오” 하자 예수 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태오 집에서 초대를 받아 세리와 죄인과 함께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이 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반문하기를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 와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것이오?”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이 말을 옆에서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 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하신 말씀 이 무슨 뜻인지를 배워라”고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은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 을 부르러 왔다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논박했습니다. 이 말씀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해 봅시다. 예수님은 먼저 죄인을 부르십니다. 예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라고 부르셨던 것입니 다. 먼저 말씀을 주시며 먼저 대화를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말씀을 통하여 다른 인간과 위격적인 만남을 이룹니다. 말씀은 인간이 자기 속을 남에게 드러내는 데 있어서 정상적인 통교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인간은 때로는 자기 지식만을 전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밀한 원의와 희망을 지식과 함께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가장 내밀한 비밀을 마음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사실 아무리 정확하고 훌륭한 말씀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그 말씀 속에 담아서 전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전부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과 자기 지식의 일부분밖에는 남에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영적인 풍요로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그 사람에게만 자기의 속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상대편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고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에 따라 마태오는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조건 응하였습니 다. “나를 따라 오너라” 라는 그 말씀에 체면을 무릅쓰고 자기의 내밀한 속을 드러내었습니 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마태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르심에 응할 때는 결코 우리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먼저 불러 주셔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먼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고, 또한 신약에서 모든 인류에게 구 원을 약속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르시고 계십니다. 마태오 역시 그 부르심은 구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 부르심은 마치 메시아 시대의 기쁨의 상징이요 하느님과의 일치의 상징이며 죄에서의 해 방을 가져다주기 위함입니다. 다음으로, 부르심에 응할 때는 자신을 온전히 포기해야 합니다. 마태오 역시 주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 즉시 주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도 부담도 없이, 오직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고 영원한 삶에로 전환한 것입니다. 즉 새로운 삶을 택했다는 뜻입니다. 사도 베드로 역시 주님께서 부르실 때 그물을 버리고 처자식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않았습 니까? 자신을 온전히 포기한 상태는 죄에서의 해방, 노예에서의 해방, 구속에서의 해방인 것입니 다. 주님께서는 죄 없다고 자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부르시지 않고 죄인인 마태오를 부르시 고 세리와 죄인들과 대화도, 초대도, 받으시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접촉하면 부정 탄다고 그들과 식사는커녕 한마디 말조 차도 하지 않으려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멀리 하시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초대도 받으시곤 하셨 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죄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마태오와 같이 주님의 부르심에 다 응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 부르심에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을 잘 따랐는지, 의인으로 자처하지는 않았 는지 반성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의인은 주님에게 필요치 않고 죄인은 주님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의인으로 여깁니까? 우리는 주님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입니다. 죄인으로 인정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항상 불러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억압당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 니다. 그분은 참회하는 죄인에게는 한없는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주시는 죄인들의 친구이십니다. 우리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깊이 인식하여 죄인인 우리게도 불러 주시도록 진정한 참 회를 발하면서 주님을 우리 안에 모시도록 노력함으로써 부르심에 귀를 기울입시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대화성당 김다니엘신부의 강론

출처 :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이로욜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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