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20 여년 전에 읽은 책 중에서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개신교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는 지 요즘 다시 찾으니 찾을수가 없다.
대강 그 책의 내용은 이렇다. 가난하고 피폐하고 살인과 강도, 도둑이 난무하는
어느 소도시에 몇몇 사람이 "예수 운동"을 시작한다.
아무리 크고 작은 그리고 개인적이나 공적이나 무슨 일을 하던간에 우선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생각, 결정한 후에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두명으로 시작한 이 운동이 그 마을을 변화시키고 천상의 도시로 바꾸어 놓는다는
이야기다. 오래되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었던것으로 기억된다.
하여튼 이 책을 읽은 후 많은 감동을 받고 한동안 나도 그렇게 살아보리라 결심하고
무엇을 하건간에 "지금 이 순간 예수라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하고 무엇이든 실행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미사를 드리고 바로 출근을 하려는 데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울고 있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채 열살이 안 된 아이가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채 그 추운 겨울에 울면서 떨고 있었다. 모두들 바쁜 출근길이라 총총걸음으로
달려오는 버스에 올라 타기 바빳고 나 또한 그렇게 버스를 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예수라면...."이 떠올랐다. '예수라면 분명 이 아이를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자 타려던 버스를 보내고 그 아이에게 다가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친척집에 왔는 데 혼자만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여의도에 있는 KBS 방송국 구경을 가기로 했단다.
그래서 나는 마침 직장도 여의도라 같이 가자며 버스를 함께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여의도에 도착했지만 그 아이는 아직 아침도 못 먹었고 또 밤새 어디에 있었는지
꼬질 꼬질해서 도저히 그냥 데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우선 직장에 출근해서 출근부에
도장 찍어 놓고 직장 상사와 동료들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그 아이를 데리고 나와
여직원들 탈의실에서 샤워를 시키고 목도리를 둘둘 목에 매주고 아침을 사 먹였다.
그리고 KBS앞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생전 처음 왔다는
서울 한 복판에 그 아이만 세워 두고 올 수가 없어 함께 두 시간을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하도 안 오길래 나는 안전한 경찰서에 그 아이를 맡겨 둘 생각으로 근처의
파출소로 갔다. 나중에 보니 그 곳은 소방 출장소였다. 출장소에 그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가는 순간 그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친 채 멀리로 도망치고 말았다. 나는 그 아이를
따라 가면서 소리 지르고 파출소의 아저씨들은 나를 따라오면서 소리지르고.....
결국 아이는 잡지 못하고 나만 파출소에 들어가 오늘 아침의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였다. "빨리 저 아이 좀 잡으세요. 쟤 또 길 잃어버리면 어떻해요"
아저씨들은 들은척도 안하고 나한테 종이를 내 놓고 '주소를 써라. 전화번호를 써라..'
그러더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자기 일도 바쁜데 아가씨처럼 그렇게 착한 일을 한 사람이 있겠냐며
'아가씨 혹시 유괴범 아니야. 저 아이 데려가다가 놓쳐 버리니까 괜히 연극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내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더니 어디엔가 전화를 해보고(전과 확인 전화)
계속 손 도장을 찍어라... 하면서 나를 유괴범 취급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어디있겠는가. 아무리 울고 불고 사정을 설명하고
'빨리 애나 찾아오라'고 해도 따끈한 난로옆에 둘러앉아 담배만 피면서 꿈쩍도 안한다.
(으이구 왠수같은 철밥통들....!!! 성실한 공무원님들... 죄송 *^_^*)
난 내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것도 기가 막혔지만 그 아이가 또 어디서 울고 다닐까 걱정
되어 발을 동동 굴렸다. 한 시간가량을 억류(?)되어 있다가 인근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
이 그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울고 있어서 데리고 온 것이란다. 난 너
무 반가와끌어안고 울었다. 아제 내 누명도 벗겨지고 아이도 안전하게 된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아이를 붙들어 놓고 아저씨들이 이것
저것 물어보았더니 나 참, 그 아이는 가출 어린이에 도둑이었으며 벌써 내게 했던 방법
을 아주여러 사람에게 써먹어 가면서 돈을 갈취했다는 것이다. 나도 이미 오천원을 쥐어
준 상태니...
아파트앞에서도 관리실에 뭔가를 가지러 들어갔다가 걸린 것이란다.
그 아저씨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럼 내가 그게 뭐냐 앵벌이 삐끼 대장인줄 아는 것이다.
난 그 때 사람들이 억울하게 범인이 되어가는 절차에 대해 이해를 다 해 버린것 같다.
설명을 해 가며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나 헛일이었다. 집에 전화하면 엄마가 기절하실 것
같고 할 수 없이 직장의 부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좀 와 달라고....
회사가 워낙 여의도에서도 알려진 큰 회사라 부장님이 바로 달려와 신원보증을 해 주자
나는 금방 풀려나올 수 있었다. 나오면서 그 아저씨들 보고 '아까 쓴 그 종이(진술서라
나...)다 찢어 버리세요' 라고 하니 그래도 기록은 놔 두어야 한다면서 굳이 안 버리는
것이다.
그 아이는 아동 보호소의 선생님들에게 연락이 되어 가기로 되었고....
그 후로 직장에서의 내 별명(?)은 '전과자'였다. 모르겠다.
지금도 내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면 그 때의 사건으로 '전과자'가 되어 있는지도.....
'그래, 자선을 베풀다가 그랬으니 *나는 하느님의 자랑스러운 전과자다*'라고 위안해도
너무나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었던지라 그 다음부터는 혹여라도 길에서 구걸을 하거나
무엇인가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가짜 아니야"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선행에 자유로와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몇년동안을 그 날의 공포(?)에 매여 있었다.
그런 후 어느 날 복음에서 "하느님께서 즐겨하시는 것은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라는
글이 다시 다가왔다. 다시 용기를 내어 선행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인생 신조가 생겼다.
"그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더라도 우선 믿어 보자"
선행을 하다가 지칠 때, 게을러질때, 남의 불행을 외면하고 싶을 때 이 복음 말씀이 떠
오른다
그리고 가끔 그 때의 그 아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때는 그 아이가 얄미웠지만 내가 점점 나이가 먹어가고 자신의 뜻만으로는 세상을
선택하여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 아이가 살아낼 수 밖에 없었던 그 아득한
현실과 그 미래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그 이후로는 행복했기를.....
이렇게 비비 꼬이고 꼬인 삶을 살았더라도 저 등나무처럼 튼튼해져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기를.....
지금은 30살이 넘었을 그 아이도 혹시 한번쯤 그 때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멍청하게 속아넘어가서 자기에게 돈을 쥐어 주고 밥을 사 먹여주고 따뜻한 물에 목욕시
켜주고 목도리를 매어 주었던 그 언니를.......
갑자기 떠오른 그 아이, 아니 그 어른을 위해 오늘밤의 묵주기도를 봉헌한다.
감자떡 수녀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