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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월 21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마르 10,13-16) / 김기성 다니엘 신부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05. 5. 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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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1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마르 10,13-16) / 김기성 다니엘 신부 [조성호 신부] 마르코 복음 안에 예수께서 노하셨다는 이야기는 이 대목에만 나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이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지침을 내려주시는 중이셨죠. 그러니 제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웠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래, 이 훌륭하신 분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첫째가 아니라 말째가 되라는데, 있는 자가 아니라 없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보살피라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나름대로 여러 구상을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어린이를 누군가 데리고 와서 축복해주길 바랍니다. ‘아니, 어른들이 모여 있는 이 중요한 자리에 어린이라니…’ 자신들의 길을 방해하는 듯한 그 어린이의 모습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 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람들과 어린이를 꾸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제자들의 모습에 화를 내십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삭제할 수도 있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을(실제로 루가나 마태오는 삭제했다)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의 중심에는 늘 어린이와 같음이 존재해있고, 그 실제로 그 어린이가 자고 보잘것없는 이, 소외된 이,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로 보면 당연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행동입니다. 그렇기에 제자들이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거만하고 다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표상임을 가르치십 니다. 그들을 받아들이듯이 순수한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여 이미 내 안에 형성되어 있 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적어도 제자들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웬 신부님은 가장 잔인한 폭력이란 바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 동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제나 사목자의 불친절한 한 마디, 공공연하게 교회의 강론대에서 지적되고 추방된 삶들, 식탁에 같이 앉기를 거부당했던 사람들, 잊혀지고 소외되었던 질병 과 죽음,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 속에 상처가 되어 있는 아픔...” 하느님의 계명을 인간들의 규율로 대치시키고픈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가장 잔인 한 폭력이라고 말입니다. 바로 그 모습에 하느님께서 노하신 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처럼 되라.’ ‘막지 마라.’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고 타인에 대한 지배욕을 버리고 자신의 특권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어쩌면 나름대로 자신의 삶이 굳어져버린 어른들에게는 넘기 힘든 산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든 예수님을 노하게는 하지 맙시다. 자신의 모든 것은 받아들여 주길 바라면서 다른 이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그 이기적인 모습을 버리도록 합시다. 대화성당 김다니엘신부의 강론!!
출처 :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이로욜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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