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마르 10,17-27)김기성 다니엘 신부
[오창열 신부]
오늘 복음은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어느 부자 청년이 자기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서 예수님의 부르심에도 불구
하고 추종을 거부했다는 이야기이고(10,17-22), 둘째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예수
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부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
다는 가르침입니다(10,23-27).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서 길을 가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바로 그 때에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최대의 존경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
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곧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마르 9,43-47 참조).
따라서 부자 청년의 질문은 종말의 구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조건으로 먼저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하느님의 계명을 제시하
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조건을 내세우십니다(10,19-21).
즉 예수님을 추종하는 일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재산을 포기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어야만 한다
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요구는 하느님의 계명에 대한 보충이나 보완이 아닙니다.
그 부자에게 하느님의 뜻을 열어주는 아주 새로운 것입니다.
소유의 포기는 그 부자가 예수님을 추종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서 구원의 의
미를 지니는 것입니다(성 프란치스코, 성 안또니오).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마태 6,19.21)라고 하셨습니다.
또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
여라.”(마태 6,25.31.33)고 하셨습니다.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부자 청년의 물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며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당신을 추종하라
고 답변하신 셈입니다.
예수님을 추종한다는 것은 스스로 가난해져서 지상의 소유물에 위안을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유대를 뜻합니다
(마르 8,34-38 :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추종하느냐 아니면 재물을 소유하느냐의 갈등 속에
서 결국 추종을 거부하고 재물을 택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물욕, 곧 재물의 마력에 사로잡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야 만 것
입니다.
이를 계기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
려운가”를 거듭 강조하며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재물 속에 구원을 가로막는 위험, 곧 인간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을 수
있는 마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격언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인상 깊게 표현해 줍니다.
사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구원받기는 그보다도 더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상당히 과장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사실상 재물 말고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다른 장애
물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대한 인간의 염려는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전적인 의존으로 바
뀌게 됩니다.
자력으로 인한 구원은 불가능하고 타력으로 인한 구원만이 가능합니다.
이런 구원의 길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추종함'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추종의 당연함과 항구성을 새롭게 일깨워 주신 것입니
다.
대화성당 김다니엘신부의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