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6일 토요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마태 17,1-9)김기성 다니엘 신부
[김충수 신부]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아
에게 드리겠습니다.”(마태 17,4)
언제나 솔직하고 잘 나서고 덤벙대며 감정 표현을 잘하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화 모습을 보고 정신없이 엉겁결에 내놓은 소리였다.
사실 이러한 솔직한 심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이라
고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모습이었고, 그래서 거기가 바로
천국인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변화된 예수님의 옷은 이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아
름답고 화려하게 만들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찬란하였으며, 그 자리에는
구약의 모든 율법의 완성을 이룬 모세와 또 예언자 중의 최고 예언자인
엘리야 예언자가 함께 나타나셨으니 거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
는가?
더더욱 놀랍고 황홀했던 것은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이
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
어라.”(마태 17,5)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으로 자기네들이 모시던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 즉 구세주 메시아라는 확증의 말씀까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완전 보증 수표가 날아온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구약의 완성을
말하며,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메시아 시대 즉 황금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 확실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지상 천국이고, 여기가 바로 최고의 승리자의 자리
가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누구라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천년만년 태평성세를 이루자는 제의를 내놓
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하산을 서두르시었고, 곧 이어 엄숙하게 당신 수난
과 죽음을 예고하시는 것이었다.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태 17,9)
이 말씀이야말로 번개 불을 맞은 것보다 더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이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찾던 구세주 메시아를 만났고, 또 그토록 바라던 메
시아 시대가 와서 주변 강대국과 권력자들, 부자들과 특권층의 모든 불의와
모욕, 억압과 설음에서 벗어나려는가 싶었는데...
그분이 죽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왜 메시아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말씀이다.
게다가 ‘너희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으니
이거야말로 정말 답답하고 환장을 할 일이 아닌가?
그렇다.
이것은 누구라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 높은 산에서 천세 만세를 누리며 전 세계를 호령하며 든든한 모세와 엘
리아를 빽으로 든든하게 모시고 하느님이 내려주시는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기를 바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 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이며 꿈이다.
누구나 행복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마냥 영원히 행복한 채로 머물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차갑고 매몰찬 것이다.
그러한 기대나 욕망은 허황된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히 안주할 곳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나
라를 준비하려 잠깐 다녀가는 여정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먼
저 차가운 현실에서의 고통을 맛보아야 하고, 원치 않는 불행을 당해봐야
한다는 것을 충실히 입증해주고 있는 사건이다.
고통이 무엇이고 불행이 무엇인지, 또 불의가 무엇이고 부정이 무엇인지를
맛보아야 참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이고, 참된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느
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니까 모든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한 것은 고진감래라는 말과 같이 고생
끝에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결국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예고하
는 사건이다.
십자가는 거룩한 변모를 위한 필수과정이다.
고통 없이 는 행복도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하나의 예언적 약속의 사건이었
다.
이 사건은 누구든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동참하려면 먼저 주님의 십자가
를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결국 죽음이다.
자기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죽을 줄 알아야만 마침내 부활의 거룩한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예언적 메시지가 바로 오늘 주님 거룩한 변모 사건의 의
미이다.
대화성당 김다니엘신부의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