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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09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09. 7. 27.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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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코린토 2서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어느 초등학교 ‘논술’ 수업 시간에 ‘꿈’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선생님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너희는 꿈이 뭐니? 커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학생 한 명이 일어나서 “백수요.”라고 말하더랍니다.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랐지요. 그래서 “백수가 되면 뭘 할 수 있는데?”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음……. 백수가 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어떤 애는 노숙자가 꿈이라고 말하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가슴에 짠한 감정이 밀려왔답니다. 하루에 4~5개의 학원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그리고 밀린 숙제를 하면서 아이들은 늘 바쁘게 지내왔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모든 질문에 ‘몰라요, 싫어요’라는 부정적인 말로 반응하기 일쑤였고, 그리고 아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쉬고 싶다’가 된 것임을 알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요즘 아이들은 정신없이 바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묵주기도를 하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다보니 아이들이 있는 곳은 주로 학원 앞이더군요. 그 밖의 장소에서 아이들을 발견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바쁘니 아이들의 장래 희망으로 ‘백수, 노숙자’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학원 수업들이 꼭 필요하다는 동기부여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학원에 가지 말라고 해도 기를 쓰고 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도 다 가는 학원이니까 너도 뒤쳐지지 않으려면 가야돼 라는 남의 기준에 의해서 가는 것이라면 절대로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과연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의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약간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청할 것이 있다고 해서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시지요. 이에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높은 자리의 기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하시지요. 즉, 주님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준을 말씀하세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모습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금 안 좋아 보이지요. 기왕이면 남이 나를 섬겨야지, 내가 남을 섬겨야 하다니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가장 높은 자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지금 순간의 만족을 추구하기 보다는 미래의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대니엘 고틀립, ‘샘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아름다운 가정 (‘좋은 글’ 중에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의자와 책상과 소파가 아니라
그 소파에 앉은 어머니의 미소입니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푸른 잔디와 화초가 아니라
그 잔디에서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동차나 식구가 드나드는 장소가 아니라
사랑을 주려고 그 문턱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설레는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부엌과 꽃이 있는 식탁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으로 터질 듯한 엄마의 모습입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고 깨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속삭임과 이해의 만남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입니다.

바다와 같이 넓은 아빠의 사랑과
땅처럼 다 품어내는 엄마의 사랑 있는 곳
거기는 비난보다는 용서가
주장보다는 이해와 관용이 우선되며
항상 웃음이 있는 동산이 가정입니다.

가정이란 아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노래가 들리는 곳
가정이란 따뜻한 심장과 행복한 눈동자가 마주치는 곳,
가정이란 서로의 성실함과 우정과 도움이 만나는 곳,

가정은 어린이들의 첫 교육의 장소이며
거기서 자녀들은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사랑인지를 배웁니다.

상처와 아픔은 가정에서 싸매 지고 슬픔은 나눠지고,
기쁨은 배가되며 어버이가 존경받는 곳,
왕궁도 부럽지 않고 돈도 그다지 위세를 못 부리는
그렇게 좋은 곳이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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