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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02)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16. 6.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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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독서 2티모 2,8-15

사랑하는 그대여,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9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선택된 이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12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13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 신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설전을 벌이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엄숙히 경고하십시오. 그런 짓은 아무런 이득 없이, 듣는 이들에게 해를 끼칠 따름입니다.
15 그대는 인정받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것 없이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일꾼으로 하느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복음 마르 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예전에 본당에 있을 때가 떠올려집니다. 봉성체를 하는데 정말로 열심히 어머니를 봉양하는 며느리를 볼 수 있었지요. 오랜 시간 동안 전혀 움직이지 못하신 채 침대에 누워만 계셨는데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시고 언제나 웃으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 자매님께 여쭈었습니다.

“자매님, 어머니를 이렇게 오랫동안 보살피는 것이 참 힘드시죠?”

그러자 이 자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번도 힘들지 않았어요. 제게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거든요.”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긴 제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도 기억나네요.

“나는 너희들 키울 때 힘든 것 하나도 몰랐다.”

저희 형제들이 정말로 모범적으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며 살았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형제들 숫자가 적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사실 제 형제는 여섯 명이나 되거든요. 또한 제가 그렇게 모범적이지 않아서 사고도 많이 쳤는데, 그런데도 불구하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제 어머니 역시 자식들을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면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짐이며 굴레로 여기기 때문에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율법학자의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사랑’으로 답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보다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과연 이 사랑의 실천이 과연 쉬울까요?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반대로 내게 짐이며 굴레라고만 생각한다면 절대로 실천할 수 없는 계명이 될 것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이 번제물이나 희생제물보다 더 낫다고 고백하는 율법학자의 말에 주님께서는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사랑의 실천이 그 어떤 제물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 우리에게도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존재를 많이 만드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을 많이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려면 굳이 굉장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행동에 들어 있는 뜨거운 사랑이다(마더 데레사).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셨던 주교님. 오늘 장례미사로 보내드려야 하네요.


혼자

‘혼자’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떠올려집니까? 외로움, 고독, 슬픔 등의 단어를 떠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자유로움, 여유, 만족 등의 단어가 떠올려지더군요. 사제로 ‘혼자’ 살다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이제는 동창신부들과 여행을 가서 함께 잠자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혼자에 익숙해진 것이지요.

혼자가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의 경험을 볼 때,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으며, 나만의 취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지요. 부정적인 것보다도 긍정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라, 가장 자유로운 상태가 아닐까요? 내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게 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 역시 소중하게 여깁니다.

혼자 있는 이 새벽에 문득 몇 글자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혼자 있는 제가 부럽죠? 그런데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부러워 할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혼자 사는데도 할 일은 참 많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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