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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05)

그리스도향기

by 로킴 2016. 6.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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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5일 연중 제10주일

제1독서 1열왕 17,17-24

그 무렵 17 집주인 여자의 아들이 병들게 되었는데, 병이 매우 심해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8 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시여! 어르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한테 오셔서, 제 죄를 기억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19 엘리야는 여자에게 “아들을 이리 주시오.” 하며, 과부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무르는 옥상 방으로 올라가서, 자기 잠자리에 누였다.
20 엘리야는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제가 머물고 있는 이 집 과부에게까지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이셨습니까?”
21 그리고 그는 아이 위로 세 번 자기 몸을 펼친 다음 주님께 다시 이렇게 부르짖었다. “주 저의 하느님, 이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22 주님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하시자, 아이가 다시 살아났다. 23 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옥상 방에서 집 안으로 내려와, 아이 어머니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 아들이 살아 있소.”
24 그러자 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사람이시며, 어르신 입으로 전하신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2독서 갈라 1,11-19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나의 행실이 어떠하였는지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유다교를 신봉하는 일에서도 동족인 내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16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다른 사도는 아무도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만 보았을 뿐입니다.


복음 루카 7,11-17

그 무렵 11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12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13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14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15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16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17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어떤 자매님께서 이런 다짐을 하나 했습니다. 즉, 기분이 좋은 날에는 뜨개질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뜨개질거리를 광주리에 넣어 두고 손도 대지 않기로 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너무 기분이 좋아서 뜨개질거리를 꺼내 열심히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뜨개질이 지루해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기분 나쁠 때에만 뜨개질을 멈출 수가 있는데, 생각해보면 피곤하고 지루할 뿐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피곤하고 지루한 것과 기분 나쁜 것은 같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뜨개질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마음속으로 기도했지요. 기분이 좋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과연 이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분이 나빠지지 않아서 결국 식탁보 뜨개질을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분 나빠져라!’라고 기도한다고해서 기분이 나빠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부정적으로 판단하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요?

많은 이들이 고통과 시련들로 인해 힘들어 하십니다. 그런데 그 고통과 시련들 자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일까요? 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50세에 암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불행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정작 이 암에 걸린 분은 “지난 50년간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불행의 상황이지만 오히려 지난 과거에 의미를 부여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솔직히 부정적인 일들은 눈에 잘 보입니다. 그에 반해서 긍정적인 일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맹추위나 폭염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만 좋은 날씨는 좀처럼 생각되지 않는 것처럼, 부정적인 일들에 온 신경을 쏟고 있으니 긍정적인 상황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장례 행렬을 목격하지요. 죽은 사람은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가엾은 마음이 드신 것일까요? 외아들의 죽음일까요? 영원한 생명에 대해 말씀하셨듯이, 죽음이 단순히 완전히 사라지는 무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을 보시고서 가엾은 마음이 드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엾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바로 외아들의 어머니인 과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과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줄을 잘 아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은 아들을 다시 살려주십니다. 죽음 자체를 보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아픔과 힘듦을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런 주님의 이 사랑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기쁨과 감사의 삶입니다. 그래야 겉으로는 보이는 부분이 아닌 그 이면 속에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어마어마한 사랑이 내 안에서 활동하고 있음이 보일 것입니다.

용기는 자신을 사랑하는 힘에서 나온다(공지영).


나인이라는 마을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다시 살리신 예수님.


삶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레시피이다(릴루 마세, ‘내 인생이잖아’ 중에서)

요리를 할 때는 여러 재료를 한 번에 하나씩, 순서대로 넣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나가야 한다.

‘아,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이거 했다가 망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 둘 씩 새로운 경험을 더해 나아가면 된다. 때로는 내 의도와 관계없이 삶이 펼쳐지기 마련인데. 이럴 때일수록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다음번에 넣을 재료 이상은 생각할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그러니까 중간에 손을 놓으면 안 된다.

간도 봐야 한다. 너무 싱거우면 소금도 더 넣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필요한 것이 차례로 나타날 것이다.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내게 꼭 맞는 재료를 구하게 되고 그러다 훌륭한 레시피를 완성하게 되면서 깜짝 놀랄 만한 요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깜짝 놀랄만한 인생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요리하면서도 삶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긴 어떤 일에서는 삶을 발견할 수 없겠습니까? 내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면, 또한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삶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해답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입니다.


어제부터 백령도 본당 신자들 피정이 2박3일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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