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주님 승천 대축일(마태 28,16-20) 김기성 다니엘 신부
오늘은 예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승천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수차례 들어 왔고, 그것이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건이라
는 것을 너무나 귀 아프게 들어 왔기 때문에 별로 어떤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승천은 분명히 먼저 하나의 이별이었고, 그래서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희
망을 주었던 분이 이제 다시 그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 주셨던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별이었고, 제자들의 넋을 잃게 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부활로써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 돌아오시자 제자들은 신이 났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다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로마 사람들과 함께 싸우시며, 자기들도 지켜 주
시고 정말 자기들이 바라던 것들을 이제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예수님에게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은 애타는 질문에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을 하시며 그들 곁
을 떠나시고 만 것입니다.
이것을 돈더즈 신부님은 “예수, 그 낯선 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넋을 잃었습니다.
그 분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구름이 몰려오고 그 분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세금도 내주시고,
생선을 구워서 그들에게 주시기도 하고, 발도 씻겨 주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제 새 하늘, 앞으로 올 나라를 약속하시고는 떠나가셨습니다.
삼십 삼년 동안 열려 있었던 하늘의 모든 문이 다시 닫힌 듯 했습니다.
막이 내린 것이었습니다.
철제 셔터가 덜커덩거리며 닫힌 것이었습니다.
불이 꺼진 것이었습니다.
안개구름이 나타났습니다.
시야가 모두 가리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넋을 잃었습니다.
넋을 잃어 어리둥절 당황했습니다.
그들은 정신이 아찔했고, 그래서 하늘만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온 몸이 굳어 버렸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두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야 그들은 겨우 다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굴러 내리듯 산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별은 이제 더 이상 전과 같은 이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절망과 비관을 느끼게 하는 이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기다리게 하는, 단순한 헤어짐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하는, 그래서 무엇인가를 생활 속에서 항상 기다리게 하는 희망이 가득한 이별이었습
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이제까지 맺어왔던 사랑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더 이
상 기대할 것이 없이 홀로 버려지게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눈으로 보지 않게 됨으로써 스스로 설수 있게 하고,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더욱 굳건히 서게 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승천을 통해서 영신적인 모습으로서 단지 그 분을 눈으로 보고 귀로 그 분의
말씀을 듣고서야 따랐던 몇몇 사람들에게 뿐만이 아니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안에 계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나오는 제자들처럼 우리들의 넋을 구름 속에
두고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즉 우리네 삶의 어려움들 속에 찌들면서 우리에게 안겨 주신 보다 큰 희망을 상실한 채로 그
저 실망과 좌절 속에 머물러 있어서만은 안 될 것입니다.
구름 속에 넋을 두고 온 사람은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몸은 허둥지둥 굴러다니다가 넘어지고 끝내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셨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에게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이제 더 이상 우리 눈에 보이는 제한된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상태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며, 부활을 통
해 드러난 하느님의 권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승천은 성령강림을 초래케 하는 전제되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우리 스
스로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며 그 뜻을 밝히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중대한, 크나큰 변화라 아니 할 수 없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치 젖먹이 어린아이처럼 언제나 당신께 칭얼대며 매달리기만 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가 마치 사춘기와 같은 시련과 고난을 겪더라도 어른답게 우리 스스로, 우리의
두발로 이 세상에 우뚝 서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마치 넘어져 있는 아이에게 옆에서 용기를 불어 넣어 주지만 직접 일으켜 주지는 않는 어머
니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들의 넋을 구름 속에 두고 살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구름 속 아버지 오른편에 넋을 두고 온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무런 신호도 소식도 예수님에게서는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침묵과 실망과 알지 못할 묘한 희망의 분위기가 뒤섞인 다락방에서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시 신호가 왔습니다.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곳곳에 불똥이 튈 정도로 강렬한 고도의 만남이었습니다.
성령, 그 분의 성령이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일어나 이 세상의 삶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세례 성사로 성령의 은총을 받은 여러분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게 하며, 그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시는,
그리고 진정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께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우뚝 서셔야 합니다.
땅 바닥에 주저앉아서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성령의
지도를 받으며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 나가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합당
한 일을 찾아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생활의 어려움 속에 찌들려 주저앉아 있지 맙시다.
다시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희망을 바라보며 굳건히 우리 신앙의 길을 가
도록 합시다.
그렇게 걸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는 표양이 될
것이며, “세상 끝까지 당신을 선포하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대화성당 김다니엘신부의 강론
|